728x90

Message

(엡 5:15-21)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15-21) 『[15] Therefore be careful how you walk, not as unwise men, but as wise,
[16] making the most of your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
[17] So then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will of the Lord is.
[18] And do not get drunk with wine, for that is dissipation, but be filled with the Spirit,
[19] speaking to one another in psalms and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ing and making melody with your heart to the Lord;
[20] always giving thanks for all things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to God, even the Father;
[21] and be subject to one another in the fear of Christ.』

 
엡 4장
옛 사람 vs. 새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새롭게 태어난 자녀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 죽은 자들처럼 살고 있으면 안된다.
거기서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삶을 오늘 본문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주었는데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가두었던 종의 비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베푸는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임금이 탕감을 해주었을까?
임금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탕감받았다는 자체만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탕감을 해주신 임금에게 집중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확장해가야 한다면?
감사할 것이 없는 자리에서도 감사를 확장해 가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감사가 없는 자리에서도 감사를 만들어가실 수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찬식

(눅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주님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내게 원하셨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고, 주님 앞에 각자가 고백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나의 답을 정리해보자면...
 

주님의 십자가...
나를 짓누르고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나와 늘 함께 하시며 풍성함을 주기를 원하시기에,

나와 완전한 연합을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
그 뜻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의식이 성찬식이었다.

이제 나의 삶을 그분이 나라면, 어떻게 사셨을까? 
질문하고, 그분의 눈빛, 말투, 행동으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주님, 아무리 이름 없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께 받은 은혜들을 힘입어 섬기겠습니다. 
주님, 아무리 어려운 상황속에 보내시더라도 자족하고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이 언제 부르시더라도, 그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주님께서 주신 지상최대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이사야
(53:2) 그는 연한 순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주 앞에서 자랐으니 그에게는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다.

(53: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53:4)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53:5)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53:6)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
(53:8) 그가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사람들 중에 그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자기들의 죄 때문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53:9) 그는 범죄하거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으나 악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부자의 묘실에 묻혔다.

 

300x250
728x90

Message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헬라어] = 파라클레 + 토스
= "보혜사"라고 표현됨.
 
보혜사는 강원도 절 이름이기도 하다.
성령의 원 의미를 살려서 적절한 한자를 붙여서 표현한 것이다.
보호할 (보)
은혜로울 (혜)
가르칠 (사)
모두 성령의 속성이고 역할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이 내 안에 있지 않을 때는,
=> 나에게 유리하면 거짓이라도 수용하고,
=> 나에게 불리하면 진실이라도 왜곡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면?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느낌이 들겠지만, 
너희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내가 버림받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드시 이런 느낌을 받게 되는 시점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리"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 응답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나를 버리셨나 싶은 고통이 느껴지는 길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 "부재"는 일시적이다.
하나님의 부재를 짧은 순간 경험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재의 시간에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잠시 떠나가시는 목적이 있으시다. 왜?!?!
 

(대하 32: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1) 『And even [in the matter of] the envoys of the rulers of Babylon, who sent to him to inquire of the wonder that had happened in the land, God left him [alone only] to test him, that He might know all that was in his heart.

심중에 있는 것들이 남김없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시간이다.
내 진짜 실력과 능력이 그 순간에 드러나게 된다. 내가 어떤 수준인지, 내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주 잠시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시는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
A가 B를 포함하는데, B가 A를 포함할 수 있는 방법? 
상호 내주의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함이다.
상호 내주? 
- 나를 철저하게 부인하는데,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
- 내가 상대를 위해서 살았는데, 내 안이 가득 채워지는 상태
- 내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는데, 사실은 내가 영광을 받게 되는 신비한 상태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질문 속에서 질문자의 관심이 드러난다.
"세상에 나타내는 것",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유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이해가 되기란 어려웠다. 그것을 도와주시는 이가 성령이셨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을 받아야 제자가 제자다워질 수 있다.
 

내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중심이 되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마음이 중심이 되어서 살고 있는가? 
평생을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인 것이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우리는 이 불안을 알고 있다.
이 시기를 겪어가면서 성장하게 된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분리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견디고 성장해 나가게 된다.
 
분리 불안을 해결하는 2가지 방법이 있다.
 
1. 아이의 정신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장난감이나 영상을 제공한다.
(엄마의 존재 자체를 생각할 필요 없게 만드는 것)
=> 세상이 주는 평안의 방식
 
2. 사전에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해 두는 것. 잠시 보이지 않더라도, 곧 나에게 오겠구나!라는 신뢰관계를 만들어두는 것.
=>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방식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자극의 세기가 계속 더 강해져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더욱더 강력해져 간다.
 
예수님은 헤어지기 전날, 발을 닦아주시고, 성만찬의 시간을 가지셨다.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셨다.
진정한 어른으로, 장성한 분량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떤 것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이들 : 애착베개가 있으면, 생명이 없는 그것 때문에 잠을 잘 잔다.
우리 : 생명이 없는 애착배게도 그런 효과가 있는데, 하니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애착을 주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 관계, 애착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평안이 우리를 꽉 채울 수 있도록 기도하자.
 
 

300x250
728x90

Message

(요 14:1-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과 베드로
모두 두려운 상황이지만,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
역사를 통해서 믿어온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믿으라
 
믿음에 대한 근거는?
자기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믿어야 합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2) 『He who did not spare His own Son, but delivered Him up for us all, 
how will He not also with Him freely give us all things?』


내가 왜 가야 하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시는 예수님.
 

(눅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주님이 거하실만한 거처가 될 수 있는 준비가 되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시겠다.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솔직한 사람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도마의 질문 덕분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 자체가 The Way 길이시라는 것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신 31:29) 『"For I know that after my death you will act corruptly and turn from the way which I have commanded you; and evil will befall you in the latter days, for you will do that which i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provoking Him to anger with the work of your hands."』

길을 떠나고야 만백성들, 
선지자들을 통해서 돌이키기를 계속 요청해 오셨던 하나님.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들이 살았던 방식을 부러워하고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시 86: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 86:11) 『Teach me Thy way, O LORD; I will walk in Thy truth; 
Unite my heart to fear Thy name.』

 
반면 다윗은 그 안 좋은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이 말씀처럼 주님의 길 The Way를 따라가고자 했다.
 
빛이요, 길이요, 생명, 진리다.
정말 놀라운 예수님의 정체성 선언
 

(요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2) 『[31] Jesus therefore was saying to those Jews who had believed Him, 
"If you abide in My word, [then] you are truly disciples of Mine;

[32] and 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Thou wilt mak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In Thy presence is fulness of joy; In Thy right hand there are pleasures forever.』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아버지 = 예수님 
성육신 하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아버지께 기도할 때 예수님도 들으시고,
예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 들으신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때문에,  (단수적 복수의 개념)
삼위일체 안에서 우리도 하나가 되듯이... 
하나 될 수 있는 그 놀라운 기쁨을 놓치지 마라.
 
나는 예수님은 아는데, 하나님은 잘 모른다?  => 내가 만들어놓은 하나님이 있을 수 있다.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버지 얼굴을 보여주시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리겠나이다!!!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더 큰 존재는 더 작은 존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놀랍게도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지만, 내 안에 계신 그분께서 역사하셔서 이야기하는 경지에 우리도 이르게 되는 것을 기대하시는 것
 
이것을 믿고, 믿음으로 구하도록...!!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이 하신 일, 그보다 더 큰 일, 주님이 미처 하시지 않은 그 일들까지 더 많은 일들을 해낼 것이다.
그것을 기대하고 계신 예수님.
주님과 함께 행하게 되는 것이고, 주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행하겠노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이름"으로 구하라.
그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네가 나보다 더 큰 일을 더욱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내 이름으로 구해라.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shall be done for you.』

 
이 시대, 이 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간절히 구해야 할까? 
 
잃어버린 영혼들을 두고 기도할 때,
선교지마다, 북녘땅의 곳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위한 기도로 주님께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300x250
728x90

Special Songs

내가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안위해 주시네
Even though I walk thru the valley fo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경험하고 그 힘을 힘입어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다윗의 양치기 과정에서, 요셉이 총리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했던 것을 기억하자.

 

Message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13: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13: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13: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13: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13: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13: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설교 기도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을 힘입어 따르겠습니다.

 
우리 삶에서, 배신은 일상적입니다.
12제자 중에서 가룟유다의 극단적인 배신, 
끝내 예수님 곁에 남지 않을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절대 사랑
자신을 배신하러 갈 발을 닦아주시는 사랑
 
에로스 : 남녀 간의 사랑
필로스 : 친구 간의 사랑
아가페 : 신의 절대적인 사랑
 
가룟유다형 배신자
- 오래전부터 배신을 계획해 옴
 
베드로형 배신자
- 너무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배신
 
왜 배신하느냐? 그 이유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고 대응할 것이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무게 아래 살게 되었다.
인간의 모든 지혜를 짜내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가룟유다를 타게팅한 사탄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2) And during supper, the devil having already put into the heart of Judas Iscariot, [the son] of Simon, to betray Him

 
생각으로 들어오는 사탄의 접근 방법.
돈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도 상관하지 않게 된다.
 
은 30 이 얼마 정도였을까?  은 30은 1200 만원
 

(엡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7) 『and do not give the devil an opportunity.』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1)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that you may be able to stand firm against the schemes of the devil.』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싸울 수 있는 무기는 그거 하나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중요한 사람은 늘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수천 절 암송을 하더라도, 소용없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암송한 대로, 설교한 대로 살지 않는 것...? 
자기 설교가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다.
봉사도 마찬가지가 된다. 
 
내가 철저히 타락했음을 알면 괜찮은데,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교회가 예수님보다 더 중요해지는 일이 생겨버린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 For from it [flow] the springs of life.』
(시 119:9,11)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9,11) 『[9] How can a young man keep his way pure? By keeping [it] according to Thy word.
[11] Thy word I have treasured in my heart, That I may not sin against Thee.』

 

말씀 자체가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8) 『For I know that nothing good dwells in me, that is, in my flesh; for the wishing is present in me, but the doing of the good [is] not.』

 
우리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계명을 주십니다. 
요 13:34-35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사랑을 하는 그 사람들이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가보면 하나님을 떠나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밖에 해결이 되지 않는데,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사람의 관심과 인정, 공동체 안에서의 분위기 등, 하나님의 사랑과 거리가 먼 것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 
 
요한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크리스천과 교회의 정체성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우리 안에 차있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뿌리째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인정받는데,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인생을 나로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출구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화를 내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지만,
항상 웃고 있지만, 독선적이고, 교만하고, 그 안에 사랑이 없기도 합니다.
 
배신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생을 나로부터 풀어가서는 안된다는 것.
내게 주어진 인생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
이 땅에서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이 충분합니다.
 
 

Message

Q.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위선적인 사람을 보니 너무나 밉다.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요?
A. 미워하면 나도 묶여 들어가는 것이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긍휼히 여겨줘야 하는구나. 이렇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가다보면, 그것을 보고 믿을 수 있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저 사람 바꿔달라는 이런 기도 잘 안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 있다.
나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Q. 왜 하나님은 악을 다스리지 못하나? 오히려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A. 하나님이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우리가 시행착오 속에서 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선을 선택해갈 수 있도록, 무한대의 자유의지를 주시는 하나님.
탕자에게 재산을 주고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잘되는 것이라 속단하지 마십시오. 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망하는게 낫지~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일상속에서, 작은 선을 베풀고,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배신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모략이다.
배신당할 때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면, 
나를 배신한 그 사람은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배신은 백신이다.

아프지만, 더 큰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Q. 유기동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봉사하는데, 누군가는 동물사랑도 우상이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A. 신은 죽었다 하는 니체가 말이 학대 당하는 것을 보다가 말을 껴앉고
신은 죽었다? = 종교 시스템이 오염되어서, 그들이 믿는 신은 죽었다 라는 비판이었던 것.
그 모습을 보면 니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이 죽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생명에 대한 존중과 존귀함이 없다면? 그것
동물들을 인격화해서 인간처럼 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로마서 8장에 나온다.
그들을 다스리고 사랑하는 것도 우리의 역활이지만, 그들을 인격화하는 것은 분별해야 할 문제이다.
 
The Way 
- 사도바울이 많이 썼던 표현.
- 말씀대로 사는 사람,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300x250
728x90

Special Songs

#소원
#은혜
색소폰 이상범 형제
키보드 박상현 형제
색소폰의 선율로 많은 말이 아닌 음색으로 전달되는 진정성 있는 찬양...
사람의 말소리보다 말의 느낌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해줄 때가 있다.
찬양의 음색도 그런 것 같다.

Message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주님이 따라오라고 하시는 길은 대체 어떤 길일까?
희생해준다? 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분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1.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For the Son of Man has come to seek and to save that which was lost."』

 
2. 많은 사람을 목숨을 바쳐 섬기기 위해서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이 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셨다.
그렇다면 그 분을 따라가는 우리의 길의 이유와 목적도 같아지는 것이다.
 
내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기 위해서 = 화목제물로서 죗값을 치르는 제물로서 죽기 위해서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it remains by itself alone; but if it dies, it bears much fruit.』

 

(빌 2:6-7)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6-7) 『[6] who, although He existed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a thing to be grasped,
[7] but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bond-servant, [and] being made in the likeness of men.』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께서, 사람과 같이 되셨다 !!!
 
요 12장까지 : 3년 동안의 이야기
요 13장 이후부터 : 1주일간의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계신다. 
 
사랑하기 때문에
검기로 왔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으러 오셨다.
 
사랑하다가 다 헤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은 모든 것을 주셨다.
 
감정놀음이지...
진정한 사랑이 되기 힘든 보통의 관계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한다.
배신하더라도 사랑한다. 저주하더라도 사랑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Now before the Feast of the Passover, Jesus knowing that His hour had come that He should depart out of this world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
술집을 들락거리고,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던.. 술 취한 나의 발을 아내가 닦아주었다.
 
죽음을 앞두고 선생이 제자를 위해서 발을 씻겨줄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사랑에 빚을 지고 있구나.
나는 누구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구나.
 
이 사랑을 깊이 깨달았던 모든 제자들이 "순교"하는 삶을 살았다.
내 목숨을 드리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였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맞지만,
내 필요와 니즈를 위해서 몇십 일씩 기도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그런 기도는 안 믿는 사람들도 다 한다. 
 
예수님의 이 사랑의 빚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갚아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보답해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사랑을 조금이나마 흘려보낼 수 있을까??
이것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내게 주신 재능으로 세상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모든 동기는... 그분의 사랑에 빚진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고전 13장에서 사랑이 없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아무리 많은 헌신을 해도 사랑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야기하신다.
 

(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절대로 실천해 낼 수 없다.
사랑과 선행을 하더라도 자기 의로 하게 된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3: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13:35)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have love for one another."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 가룟 유다
자기를 더 사랑했다. 이스라엘의 혁명을 통해서 위대한 나라가 되게 하길 원했던 유다. 
섬기라 하고 더 작아져야 함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
지배하고 싶고 더 높아지길 원하는 유다
향유옥합을 깨며 예수님을 섬기는 마리아를 향해서 화를 냈던 유다
 
날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은?  => 사랑하다가도 화를 내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오신 예수님
그러나 교회를 세상처럼 만들어가는 사람들
 
날마다 그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먹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목이 마르고 분노가 해결되지 않고, 시기심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이 말씀을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확인하고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 설교를 듣더라도,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안 전하는지를 구별하고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가짜 나부랭이, 이단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가정이 곧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보혜사(helper)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날마다 깨달아지고, 확인하게 되기를!!!

 

Q&A

Q. 바울이 고전 13장에서, 믿음 소망보다 사랑을 강조한 이유? 
A. 믿음,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이 모든 것은 효력 정지가 됩니다. 그때 이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이 사랑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그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이 필요합니다.
 
Q. 우울증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믿음을 갖고 계신 시아버지께서 우울증에 시달리시는데, 믿음이 좋았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A. 인간이 볼 때 그 사람의 믿음이 좋다 나쁘다 알 수가 없다. 매일같이 나오더라도 잘못되어서 병들어갈 수도 있고,
1년에 1-2회 나오더라도 믿음이 건강할 수도 있다. 
교회를 오래 다녀온 사람들 중에도 정서적 불안이 심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무서운 감독자로 늘 대하는 사람들은 평안, 기쁨, 자유함이 없을 수 있다.
 
우울증? 평생을 살다가 15% 정도가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원인도 다양할 수 있다. 일단 이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비하신 것일 수도 있다.
 
가룟유다? 분노조절장애 같은 것이 있었을 수 있다. 
가룟유다는 비교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칼을 품에 들고 다닐 만큼 불안해했고,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믿지 못했다.
믿음이 근원적으로 이것을 치유할 수 있다. 
 
부러워하거나 => 믿음이 오면 부럽지 않다.
두려워하거나 => 믿음이 오면 두렵지 않다.
포기하거나 => 믿음이 오면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전제가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믿음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Q. 저는 남에게는 화가 안 나는데, 웬만한 것은 다 참을 수 있는데, 남편에게는 화와 원망이 올라옵니다.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세요. 
A. 누구에게나 이런 십자가가 있습니다. 직장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남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 그런 사람을 한 두 사람 꼭 만나게 돼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분이 나의 은인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어렵게 하는 분들이 바로 우리를 계속적으로 주님의 사랑에 거하게 하는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저런 고난이 나에게 있나...? 나에게 필요한 고난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야는 높고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정말 감사하기 힘든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오늘 메시지를 들으며, 다시 한번 선명해지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
이 땅에서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유일한 힘
그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사랑을 매일 확인해 나가고,
실천해 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업무를 하다가 여러 사정으로 어려워진 두 사람이 떠올랐다.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겠다.

300x250
728x90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 아픔, 괴로움이 있다.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가정에 누군가 아프면, 모든 일은 올스톱된다. 
병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들어온 불청객 하나로 인한 그 문제 때문에,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병이고 골치거리였던 것
예수님의 시야에서는 "영광"을 받을 수 있는 통로
 
동일한 문제를 어떻게 "영광"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해봐야 할 질문...
 
내가 잘 되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일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잘 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려움의 과정을 거쳐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다.
 
고난을 피해가려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시야로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빛은, 일출일까? 일몰일까? 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믿고 있을까? (5월 달에 제주도 우도에서 봤던 "일출" 사진)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사랑하셨다면, 하루라도 빨리 와서 도와주셔야 했던 것 아닐까...?!?!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은... 여기서 왜 이틀을 더 기다렸다가 오신 것일까?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무엇인가...?!?!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 : 4일간 장례를 치르면 완전히 죽었다고 봤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뜻대로 다 되었다면 아무리 잘되어봐야 내 size로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면, 하나님의 size대로일을 행해나가신다.
 

일찍 오셨다면 병 치유 였겠지만, 이틀 뒤에 오셨으니, 부활 사건이 되었다.

 
나를 반기지 않는,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가려고 하시는 예수님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누구나 이런 길을 피하려 하는데, 왜 예수님은 이런 길을 자처해서 가려고 하셨을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병  → 영광
밤과 돌  →  빛과 생명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 나의 이 목회, 나의 이 예배...
→  (세상의 시야) 개고생
→  (하나님의 시야) 내 인생에서 가장 복된 시간
이라고 믿음의 시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1:15) and I am glad for your sakes that I was not there, so that you may believe; but let us go to him.

이틀을 더 유하신 이유, "나사로가 죽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제자들이 믿을 수 있게, 깨달을 수 있게 기회를 만드신 것
 

지금 이틀을 더 유한 이유? 
"너희를 위하여" = 제자들의 "믿음" 위하여
기다리셨던 것이다.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의 이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은 부활을 위해서 가려고 하는데,
도마는 왜 "죽으러" 가자고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을 때 지금 상황은 돌 맞으러 죽으러 가는 길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고난을 감당하겠다 하는 그의 뜻은 기특할 수 있지만,
그는 예수님이 믿길 원했던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시작은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말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후기철학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흔히 위 말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존재를 말해준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널리 퍼져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의 언어로 나의 언어를 바꾸어 나가자! 
병?   →  영광
죽음? →  생명과 부활
고난?
 →  (               )
상처?
 →  (               )
인생의 많은 시련들?
   →   (               )

"복음의 언어"로 표현할 때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사로는 다시 산 후에 다시 죽습니다. 나사로는 부활이 가능하다는 모형을 보여준 것입니다.
부활의 모형을 보여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다시 사신 후에 승천하여 영원히 사는 본체, 본질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곧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가장 복된 것은 Eternal Life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삶으로 실천할 내용 돌아보기

지금 내 삶에서 믿음의 시야로 바라보고 기도해야 할 것?
 
- 회사의 구조조정
- 올해, 내년에 우리를 지탱해줄 매출 구조
- 가족들의 믿음과 구원, 관계성의 온전한 회복
-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생의 비전과 가치를 나의 인생 가운데 잘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선한 일들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기에 기도도 정기적으로 간절히 하지 않고 행동도 구체적이지 않다. 
38년된 병자처럼, 앉은뱅이처럼,
죽은 나사로를 바라보는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일의 영광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믿음이 없기에 하는 행동들을 최소화하자.
교제 목적 없이 일락을 위한 시간을 최소화하자.
* 적용 : 가족들을 방문할 때, 빈 손으로 가지 말자. 처남네, 형네 가족들을 위해서도 섬길 것들을 준비하자
*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베이직 교회 영상으로 좋은 메세지들을 소개하자
 
 
 
 
 
 
 
 
 
 
 
 
 
 
 
 
 
 
 
 
 
 
 
 

300x250
728x90

이제 곧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약 30% 가량 되는 직원분들이 권고사직될 예정이다.
 
가까운 지인들과 창업을 한지 5년 정도 되었다.
수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고, 피봇도 여러 번 했었다.
첫 분야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분야로도 고민해볼 만 큼, 우리는 절박한 경우들이 많았다.
생존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첫 비즈니스모델로 돌아와 사업이 어느 정도 성숙해져가고 있을 때,
인수제안이 들어왔고, 투자만 받기에는 쩐이 부족하다 여겨져서 인수를 받아들이고, 마음껏 사업에 매진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매크로 정세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금리 시대가 되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건강한 재무구조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https://www.sentv.co.kr/news/view/645632)

스타트업 몸집 줄이기
스타트업 해고폭풍에 대한 유튜브

 
모회사와도, 그리고 우리 회사의 경영진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이 구조조정의 흐름을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이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나를 힘내게 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했다.
결국은 나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창업자로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동기 

어려워진 회사를 두고 다른 길을 가는 것과 비교하여, 지금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했다.
추가 투자가 쉽지 않은 시장 상황에, 대부분의 지분이 모회사에 있는 상황,
구조조정으로 30%의 직원분들을 감축해야되고, 일의 강도는 더욱 힘들어지고, 어려운 상황이 계속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무엇을 위해서,
왜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스스로의 동기를 다시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찾아올 어려움의 시간들 속에서 고민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4가지

1. 수익을 지키고 창출해내야 할 목표

현 시점에서, 가장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하다. 회사가 잘 운영되게 하고, 수익을 지속적으로 내는 구조가 되면, 
지분을 다시 회수해 오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고, 이를 통해서 투자를 받고 건강한 성장 구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지만, 최선의 결과를 바라본다면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2.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

함께 해온 초기 멤버들, 함께 갈 동료들, 응원해주고 기대해주는 가족들
- 회사 안에는,  남아서 헌신하려는 소중한 동료들이 있고, 또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애써온 많은 동료들이 있다.
- 또 회사 밖에는, 나와 우리의 회사를 바라보며 응원해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 모두가 우리의 이 사업을 응원해주고 있다.
- 안되면 뭐 나가서, 좋은 곳에 가서 돈 잘 벌면 되지.. 할 수도 있지만, 5년간을 고생하며 일구어온 이 회사가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자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3. 공동창업자, 경영진으로서의 책임

- 우리 회사의 이름을 믿고, 또 우리 경영진을 믿고, 우리 회사에 입사를 선택해준 직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이 회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선택해주었다. 
- 그들에게 최고의 회사를 제공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좋은 회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
 

4. 창업자로서의 보람과 기쁨 

- 지금 이 시점에 아무리 좋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다해도, 그 회사는 우리가 직접 키운 것이 아니다.
- 우리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온 결과로 회사가 성장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보람과 기쁨, 이것은 아무리 좋은 회사에서 좋은 조건을 받는다해도, 얻을 수 없는 가치이다.
 
 
이 모든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23년 하반기, 이제 다시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야 한다. 
어제 곰곰히 생각하며, 내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었다.
이제 나는 준비되었으니, 멤버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작별을 고할 것인가?!?!
 

떠나는 직원들에게 해주어야 할 이야기

회사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갖고 떠나고,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마무리 해주고 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와 도움은 무엇일까?
퇴직금과 위로금, 이직을 위한 지원을 최대한 해주어야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 회사에 있었던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도록,
회사를 살려내고, 잘되게 되서 나중에 언제든 오고 싶은 회사가 되게끔 해야겠다.
떠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 우리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려야겠다.
 
 
아무튼... 
결론은 슬프고 우울하다. 작아진다. 우리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보수적으로 예측해왔다면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 

하지만 이미 진행되어왔다. 후회할 필요는 없다. 이 순간 배운 교훈들을 마음에 새겨야 할 때다.
쳐져있을 여유는 없다.
최선을 다해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 맞는, 내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그리고 나의 태도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성경 말씀들을 찾아보았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 16:3) 『Commit your works to the LORD, And your plans will be established.』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하듯, 주님을 의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나가자.
작은 일, 큰 일, 무슨 일이 있어도,
차가운 마음을 유지하며 불평 불만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사의 태도를 늘 유지하자.

(잠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잠 21:5) 『The plans of the diligent [lead] surely to advantage, 
But everyone who is hasty [comes] surely to poverty.』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른다고 했다. 마음이 졸이고 불안하다고 조급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자.
부지런한 자의 계획은 확실히 풍부함에 이른다고 하였다.
 
from. histep
 
 

300x250
728x90

우연히 유튜브를 보았다.
연세 지긋하신 박사님의 이야기...
뭔가 딱 봐도 고리타분할 것 같았지만 ㅋㅋㅋ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90년 살다 보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걸 하세요
출처 : https://youtu.be/5ua4HTirj3Y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걸 하세요"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여러 이야기들이 너무나 주옥같이 마음에 남았다. 

 
 

1. 90살이 되어도, 사는 것이 매일매일 재밌게 될 수 있는 비결!?!?


박사님 인터뷰 내용

60세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 내 삶은 어떤 궤적을 남겨왔을까? 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아등바등 먹고살고, 자식들 키우고,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앞으로 내가 얼마를 살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정신분석을 해왔는데,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왔다.
개인의 심성만 연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개인에게는 가족, 공동체, 국가 모든 것들이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어릴 때는 내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부모의 칭찬, 주변의 인정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내가 공부하는 재미는 없었다. 다 의무적인 공부였다.
 
퇴임하고 나서 고려사이버대에서는 공부를 못했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칭찬할 사람도 없었다.
내 마음대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자의적으로 창의적으로 공부했다. 
재밌으니깐, 궁금증이 생기고, 탐구를 하게 되었다. 더 재밌어졌다. 
( 결국, 고려 사이버대학 문화학과 최고령 수석을 하셨다. 평생 공부하셨던 한 분야의 박사님이 사이버대학 가셨으니, 
사실은 양민학살 아니었을지 ㅎㄷㄷ )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 공부가 아니었다.
퇴임하고 나서 비로소 내 공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들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공부에는 때가 있는 게 아니었다.

 
평생을 공부하는 스웨덴 문화가 부러웠다.
학교에 들어갔다가 직업을 갖게 되고, 결혼하고, 다시 또 학교로 간다.
그러다가 또 문득 공부할 기회가 되면 공부를 해서 언제든 졸업을 한다. 우리는 졸업도 다 때가 있다고 할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우리랑은 문화가 너무나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이렇게 규격화가 된 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면서 재밌는 이유?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면서, 내가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다.

 

공부란? 별게 아니다.
궁금증이 있으면 찾아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나이에도 매일매일이 재밌는 이유다.

 
 

2.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힘

박사님의 후배가 유명한 등반가였다.
8,840m 히말라야 정상 앞에서 20m 앞두고 실패한 것이다.
두고두고 이 사건을 아쉬워하는 후배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생각을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등반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8,820m까지의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패란?
진행 중인 성공이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과 뜻을 합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개인사업자를 내었고, 2018년 9월 법인 설립이 이루어졌다. 사업을 시작하고 5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피봇도 여러 번 했었고,
직원들 월급은 줘도 우리는 가져가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망하지 않았고,
좋은 투자자도 만나고 유능하고 열정적인 동료들이 모여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안 좋아지고, 또다시 매우 어려운 위기를 만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오르고 올라왔는데,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거센 눈보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되겠다. 그것은 "진행 중인 성공",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에...
박사님의 후배는 다시 등반하여 결국 정상 등반에 성공하였다. 
 


인상 깊었던 이 두 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았는데, 박사님이 쓰신 책에 대해서 궁금해졌고, 들어가서 좀 살펴봤는데 매우 흥미가 갔다. 기회가 될 때 한 번 읽어봐야겠다 :) 
 

 
 

서문에서 인상깊었던 내용에 빨간줄 쫙~

이분의 삶의 흔적들이, 참 인상깊다.
나도 이런 step을 남기고 싶다.   
(feat. Following His Step)

300x250
728x90
(요 8:48-59)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요 8:48-59) 『[48] The Jews answered and said to Him, "Do we not say rightly that You are a Samaritan and have a demon?"
[49] Jesus answered, "I do not have a demon; but I honor My Father, and you dishonor Me.
[50] "But I do not seek My glory; there is One who seeks and judges.
[51] "Truly, truly, I say to you, if anyone keeps My word he shall never see death."
[52] The Jews said to Him, "Now we know that You have a demon. Abraham died, and the prophets [also]; and You say, 'If anyone keeps My word, he shall never taste of death.'
[53] "Surely You are not greater than our father Abraham, who died? The prophets died too; whom do You make Yourself out [to be]?"
[54] Jesus answered, "If I glorify Myself, My glory is nothing; it is My Father who glorifies Me, of whom you say, 'He is our God';
[55] and you have not come to know Him, but I know Him; and if I say that I do not know Him, I shall be a liar like you, but I do know Him, and keep His word.
[56] "Your father Abraham rejoiced to see My day, and he saw [it] and was glad."
[57] The Jews therefore said to Him, "You are not yet fifty years old, and have You seen Abraham?"
[58] Jesus said to them, "Truly, truly, I say to you,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59] Therefore they picked up stones to throw at Him; but Jesus hid Himself, and went out of the temple.』

이전 스토리 ... 
자유 논쟁이 펼쳐졌다.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사마리아인 아니냐?! = 천하의 잡놈 아니냐?!?
예수님이 귀신들렸다 하는 유대인들...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세상은 지금... 제 정신으로 살고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  그딴 것이 어디있느냐?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미친 것이 맞습니다.
어디에 미쳐야 제대로 사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하는 이 세상의 시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 아멘, 아멘, 반드시 꼭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중요한 메세지를 전하실 때 붙이는 단어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it remains by itself alone; but if it dies, it bears much fruit.』

 
왜 믿으라고 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핵심... "살기 위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사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부담이 되고 듣기 싫어도, 예수님의 이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을 보지 않기에... 삶의 모든 지평이 달라지게 된다.

왜 예수 믿고 변하지 않는 이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 켈러
"이 세상을 떠나며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다"
I can`t wait seeing Jesus
send me home...

 
못본다고 해야, 볼 기회가 생기는데...
죄가 있다 인정해야 돌이킬 기회가 생기는데...
 
세상은 자기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하려고 한다.
입만 열면 자기 영광을 추구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야기 하거나 행동하지 않으셨다.
 
"안다" = 깊은 관계, 경험적으로 안다.

믿음을 따라 죽은 사람들...


(히 11:10,13)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 11:10,13) 『[10] for he was looking for the city which has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13] All these died in faith, without receiving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nd having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having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exiles on the earth.』

 

 

300x250
728x90

web3에 대해서 많이들 하게 되는 질문들에 대해서,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 #1. web3라는 얘기는 왜 나오는 걸까? web은 알겠는데, web2, web3는 무슨 차이인가?
  • #2. 각각의 구체적인 사례는?
  • #3. web3의 세계는 정말 찾아올 수 있을까?

 

 

#1. web3라는 얘기는 왜 나오는 걸까?

(web은 알겠는데, web2, web3는 무슨 차이인가?)

web1 ~ 3 세대별 특징 비교표

 
Web1

이용자는 view만 할 수 있고 계정이 없다.

 
Web1은 초기의 정적인 웹입니다. 이는 주로 정보의 단방향 전달에 초점을 두었으며, 사용자는 주로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용자와 서버 간의 상호작용이 제한적이었고, 대부분의 플랫폼이 중앙집중화되어 있었습니다.

Web2 

web2, 이용자 계정의 Password를 회사가 보관한다

Web2는 상호작용과 협업이 강조된 웹입니다. 이는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포함한 현대적인 인터넷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Web2에서는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실시간 상호작용과 소셜 네트워킹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은 여전히 중앙집중화되어 있고, 사용자 데이터와 제어 권한이 플랫폼 운영자에게 집중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Web3

web3,  이용자 계정의 Password를 개인이 보관한다

오랜만에 web3 SNS 스티밋에 들어갔다가 password를 기억하지 못해서, reset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steemit은 역시 찐 web3 서비스다. 패스워드 잃어버리면 끝인 것이다. 중앙화되어 계정을 컨트롤하고 관리하는 주체가 되는 회사가 없다. 각 개인이 잘 보관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새로 계정을 만들고 첫 글을 남겼다.
https://steemit.com/john8-32/@heejoonhwang/feat-truth-shall-set-you-free

이번 주말 뭐할까? (feat.Truth shall set you free) — Steemit

The Matrix has you 영화 MATRIX 1, 10번 이상 봐왔던 이 영화 대사의 의미를 곱씹을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짜여진 MATRIX 판 같은 세상에 갇혀 있는 너 모피어스 : " you know the truth? that you are the slave

steemit.com

 
Web3는 분산 웹(Distributed Web)이라고도 불리며, 중앙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통제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Web3는 블록체인과 분산 웹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들이 중앙 기관이나 중개자 없이 서로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는 사용자의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과 개인정보를 강화하며, 스마트 컨트랙트와 암호화폐를 통해 신뢰성과 투명성을 보장합니다.
 
따라서, Web3는 중앙 집중화된 기존의 인터넷 모델에서 탈피하여 분산화와 사용자의 자율성을 강조한 새로운 웹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암호화폐,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 분산화된 스토리지, 신원 인증 등 다양한 기술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현될 수 있습니다. Web3는 사용자가 중앙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데이터와 디지털 자산을 직접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웹 환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Web3는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중심으로 구축됩니다. 이더리움(Ethereum)과 같은 플랫폼은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DApp)을 개발하고 실행하기 위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를 통해 개발자들은 중앙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분산된 방식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Web3의 목표는 사용자의 자율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며, 중앙화된 기존의 웹 모델에서 벗어나 상호작용과 협업의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중심으로 한 Web3의 발전은 분산화와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2. 각각의 구체적인 사례는?

twitter 테크 라이터의 심플한 설명

Web1

web1,  get views 

- 1990년대 초반의 초기 인터넷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정적인 HTML 웹페이지가 주류이며, 정보의 단방향 전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 사용자는 주로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상호작용의 기회는 제한적입니다.
- 예시: 199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 시기에는 정적인 기업 웹사이트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Web2 

web2,  get likes

- 현대적인 인터넷의 모습을 대표하는 웹입니다.
- 사용자들이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실시간 상호작용과 소셜 네트워킹이 가능합니다.
- 사용자들 간의 협업이 강조되며,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활발히 사용됩니다.
- 예시: Facebook, Twitter, Instagram, YouTube, Google Docs 등이 Web2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Web3

web3,  get paid

- 현대적인 인터넷의 모습을 대표하는 웹입니다.
- 중앙 집중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용자의 자율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조하는 웹입니다.
- 블록체인과 분산 웹 기술을 활용하여 중개자 없이 사용자들이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 사용자의 데이터와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스마트 컨트랙트와 암호화폐를 활용하여 신뢰성과 투명성을 보장합니다.
- 예시: Steem 탈중앙화 SNS, MetaMask를 이용한 탈중앙화된 애플리케이션(DApp) 사용, Uniswap을 통한 탈중앙화된 거래, OpenSea에서의 NFT 거래 등이 Web3의 예시입니다.
 
 

유저 10만 명 이상을 모아낸 web3 서비스?

CryptoKitties: CryptoKitties는 Ethereum 블록체인 위에서 동작하는 탈중앙화된 가상 고양이 게임입니다. 사용자들은 유전자 조합을 통해 고유한 디지털 고양이를 생성하고 거래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2017년에 출시되었으며, 출시 이후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어 유저 수가 급증했습니다. CryptoKitties는 유저들이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Web3의 잠재력을 보여준 성공 사례 중 하나입니다.

Uniswap: Uniswap은 Ethereum 기반의 탈중앙화된 거래소로서, 사용자들이 암호화폐를 교환하고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자동으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Uniswap은 간편한 사용성과 탈중앙화된 특성으로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받아왔으며, 유저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Brave Browser: Brave Browser는 개인정보 보호와 광고 차단 기능을 강조하는 웹 브라우저입니다. 브라우저 내에서 기본적으로 광고가 차단되며, 사용자는 광고를 볼 경우 보상으로 암호화폐인 Basic Attention Token (BAT)을 받을 수 있습니다. Brave Browser는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 보호와 광고 선택의 권한을 부여하여 많은 유저들의 관심과 참여를 얻었습니다.
 
Steem : Steem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된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사용자들은 콘텐츠를 생성하고 공유하며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Steem은 사용자들이 플랫폼 내에서 콘텐츠를 작성하고 게시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스팀 토큰을 보상으로 제공합니다. 이 토큰은 사용자들이 콘텐츠에 투표하거나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으며, 작성자는 받은 보상을 스팀 토큰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Steem은 사용자들에게 중앙 집중화된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는 다른 경험과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과 제어권을 가지며, 중간 거래자나 광고주 없이 직접적인 상호작용과 보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Steem은 대규모의 사용자를 모으며 Web3의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3. web3의 세계는 정말 찾아올 수 있을까?

이야기가 길어져서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300x25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