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고갱의 인생이 궁금하다.

 

시작은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나서 였다. 나는 그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 이야기에 깊이 빠져 단숨에 읽어내려 갔는데, 주인공에게 나를 깊이 투영했던 것 같다. 아내와 자식이 있고, 번듯한 금융권 직장이 있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인 그가, 마음 속에 타오르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져버릴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림을 시작하여 궁핍하고 초라한 삶을 살다 결국 남태평양 어느 섬에서 알아주는 이 없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결국에는 위대한 그림을 그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서머셋 몸이 폴 고갱의 인생을 모티브로 해서 그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게되자, 나는 폴 고갱의 실제 삶은 어떠했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고갱, 고귀한 야만인(Gaoguin, "Ce malgré moi de sauvage")

 

그와 관련된 책들을 검색하다 이 책을 알게됐다. 시공사 디스커버리 시리즈 중 하나로 나온 책인데, 작고 얇아 입문용으로 좋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오르세 미술관의 감독이자 국립 미술관의 행정 감독관인 프랑스아즈 카생이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고갱의 유년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일생은 간략하게 설명하고, 고갱의 여러 작품들과 관련 사진들을 대부분 컬러로 싣고 있다. 뒷 부분에는 고갱의 편지와 지인들의 기록들도 담겨있었다. 다른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지명, 등장인물, 미술사 용어들에서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 지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월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고갱의 인생과 작품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입문해봐도 좋을 것 같다.

 
 

숫자로 보는 고갱
  • 55세 : 1848년 6월 7일 출생 ~ 1903년 5월 8일 사망
  • 160cm : 고갱의 신장. 큰 키는 아니었다.
  • 5명 : 증권거래소에서 주식거래인으로 일하던 그는, 1873년 메테 가트라는 덴마크 여성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 1883년 : 이전까지 주식거래인과 화가생활을 병행하던 그는, 1882년 프랑스 주식시장 붕괴로 실직 후, 이듬 해에 전업화가의 길을 걷는다. 그해 11월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파리를 떠나 생활비가 적게드는 루앵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생활고에 아내는 6개월 만에 떠났다고 한다.
  • 75점 :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게 된 고갱은 1887년 남태평양 섬에 머물렀는데, 파리로 돌아와서 1888년 한 해 동안에만 75점의 그림을 그렸다. 꾸밈없는 원시성을 갈망하고, 야만인(barbarian)으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던 고갱은 이 때 남태평양에서 엄청난 영감을 얻었던게 아닌가 싶다.
  • 1895년 : 고갱이 최후의 남태평양행을 떠난 해이다(다시 돌아오지 못했기에). 이전에는 원시성을 찾아 순수함을 그리고 인정을 받겠다는 의기양양함이 있었다면, 이번 여행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파리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책에서는 스스로 떠난 유배라고 했다.)같은 느낌으로 떠난 것이었다. 당시 고갱은 병고와 술과 절망에 쩌들어있었고, 울면서 떠났다고 한다.
  • 1,000프랑 : 1900년 당시 고갱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외 8점이 팔린 가격이다. 이 가격을 듣고 고갱은 무척 실망했다고 한다. 당시 남태평양 생활비로 한 달에 300프랑을 후원받게 되서 고갱이 좋아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 1,000프랑의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는 너무 시대를 앞 서 갔었나보다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고갱은 소설 속 스트릭랜드와 얼마나 닮았나?

 

이 책을 통해 고갱의 실제 인생을 들여다본 결과, 정말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스트릭랜드와 마찬가지로 고갱도 금융권에 종사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전업화가로 전향했고,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생활고를 겪으며 그림을 그렸고, 남태평양 타히티에서 그의 예술을 완성시키다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전업화가의 길을 걷게된 계기와 과정이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는 스트릭랜드가 한창 안정적인 시기에 스스로 모든 것(성공한 일자리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을 버리고 가족들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훌쩍 떠났다.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소설에서 가족들과 화자는 물론, 독자들도 스트릭랜드가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처럼 바람을 피워 다른 여자와 도피한 것인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파리의 남루한 여관에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그림만을 그리고 있는 스트릭랜드를 마주했을 때 극적인 반전은 그의 예술혼을 더욱 더 숭고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래서 실제 폴 고갱도 이런 극적인 과정이 있었던 것인지 더 궁금했었다. 나는 이것이 한편으론 새삼 다행으로 느껴졌는데, 고갱은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전업화가로 들어선 계기도 프랑스 주식시장의 붕괴로 실직을 하게 되어서였다. 그러나 주식거래인으로 빨리 자리를 잡았던 것처럼 화가로서 단기간에 성공할 수는 없었고, 갑작스러운 생활고에 아내는 6개월만에 가정을 떠났다고 한다.(그렇다고 이혼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고갱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것 같고 홀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고갱은 파리에서 인정받는 화가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몇 차례 남태평양 여행으로 영감을 받고, 파리에 돌아와서 작품 홍보를 위한 활동들을 한 것 같다. <노아 노아>(타히티 말로 '향기'), <마오리의 고대신앙>과 같은 필사본 책을 엮어낸 것도 본인의 작품이 좀 더 이해받기 원해서였다. 반면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으로 떠나 쭉 거기 정착했던 것 같다. 
 

마치며

 
이 책을 통해 고갱의 유년시절부터 말년까지 훑어볼 수 있었다. 미술품 수집에서 부터 시작해서 그의 삶을 걸고 예술을 갈망하기까지, 그의 인생 자체가 극적이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전에는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원시적이고 순수한 어떤 것을 추구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훗날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같은 거장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오롯이 한 길을 걸어간 거장의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 큰 감동과 울림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알고 싶은 폴 고갱! 나중에 고갱의 작품들에 관해서도 포스팅으로 다뤄봐야겠다.
 

300x250
728x90

우연히 유튜브를 보았다.
연세 지긋하신 박사님의 이야기...
뭔가 딱 봐도 고리타분할 것 같았지만 ㅋㅋㅋ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었다.
 

90년 살다 보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걸 하세요
출처 : https://youtu.be/5ua4HTirj3Y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이걸 하세요"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여러 이야기들이 너무나 주옥같이 마음에 남았다. 

 
 

1. 90살이 되어도, 사는 것이 매일매일 재밌게 될 수 있는 비결!?!?


박사님 인터뷰 내용

60세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 내 삶은 어떤 궤적을 남겨왔을까? 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아등바등 먹고살고, 자식들 키우고,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앞으로 내가 얼마를 살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정신분석을 해왔는데,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왔다.
개인의 심성만 연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개인에게는 가족, 공동체, 국가 모든 것들이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다.
 
어릴 때는 내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부모의 칭찬, 주변의 인정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내가 공부하는 재미는 없었다. 다 의무적인 공부였다.
 
퇴임하고 나서 고려사이버대에서는 공부를 못했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칭찬할 사람도 없었다.
내 마음대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자의적으로 창의적으로 공부했다. 
재밌으니깐, 궁금증이 생기고, 탐구를 하게 되었다. 더 재밌어졌다. 
( 결국, 고려 사이버대학 문화학과 최고령 수석을 하셨다. 평생 공부하셨던 한 분야의 박사님이 사이버대학 가셨으니, 
사실은 양민학살 아니었을지 ㅎㄷㄷ )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 공부가 아니었다.
퇴임하고 나서 비로소 내 공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들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공부에는 때가 있는 게 아니었다.

 
평생을 공부하는 스웨덴 문화가 부러웠다.
학교에 들어갔다가 직업을 갖게 되고, 결혼하고, 다시 또 학교로 간다.
그러다가 또 문득 공부할 기회가 되면 공부를 해서 언제든 졸업을 한다. 우리는 졸업도 다 때가 있다고 할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우리랑은 문화가 너무나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이렇게 규격화가 된 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어 공부하면서 재밌는 이유? 
나이가 들어서 공부하면서, 내가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다.

 

공부란? 별게 아니다.
궁금증이 있으면 찾아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나이에도 매일매일이 재밌는 이유다.

 
 

2.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힘

박사님의 후배가 유명한 등반가였다.
8,840m 히말라야 정상 앞에서 20m 앞두고 실패한 것이다.
두고두고 이 사건을 아쉬워하는 후배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생각을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등반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8,820m까지의 등반에 성공한 사람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패란?
진행 중인 성공이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과 뜻을 합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개인사업자를 내었고, 2018년 9월 법인 설립이 이루어졌다. 사업을 시작하고 5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피봇도 여러 번 했었고,
직원들 월급은 줘도 우리는 가져가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망하지 않았고,
좋은 투자자도 만나고 유능하고 열정적인 동료들이 모여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요즘 시장은 안 좋아지고, 또다시 매우 어려운 위기를 만나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오르고 올라왔는데,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욱 거센 눈보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되겠다. 그것은 "진행 중인 성공",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기 때문에...
박사님의 후배는 다시 등반하여 결국 정상 등반에 성공하였다. 
 


인상 깊었던 이 두 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았는데, 박사님이 쓰신 책에 대해서 궁금해졌고, 들어가서 좀 살펴봤는데 매우 흥미가 갔다. 기회가 될 때 한 번 읽어봐야겠다 :) 
 

 
 

서문에서 인상깊었던 내용에 빨간줄 쫙~

이분의 삶의 흔적들이, 참 인상깊다.
나도 이런 step을 남기고 싶다.   
(feat. Following His Step)

300x250
728x90

 

1.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어떤 작품일까요?

박완서(朴完瑞)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한국 현대 문학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한 말씀만 하소서"입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의 아들이 죽은 사건을 다룬 자서전, 일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아들이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아픔과 슬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가 아들의 사망과 그로 인한 아픔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작품으로, 그녀의 솔직하고 깊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자서전은 그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수용, 회복의 과정을 다루며, 그로 인해 변화된 삶과 그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의 아들의 죽음을 다룬 자서전으로, 그녀의 아들과의 이별과 이로 인한 슬픔, 그리고 이후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 말씀"은 무엇일까요?

 

ChatGPT 선생

 
ChatGPT 선생의 대답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박완서가 생각한 "한 말씀"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박완서는 가난과 억압, 그리고 소통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여러 목소리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한 말씀"은 억압된 이들이 억누르고 참아야 하는 목소리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제약과 억압으로 인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 말씀"은 이들이 주변에게 소리 내어 자신의 억압과 억울함을 표현하고,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한 말씀"은 소통의 부재와 이해의 부재를 비판합니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기 어려워하며, 각자의 억압과 상처를 내면에 묻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어려움과 갈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 말씀"은 이러한 소통과 이해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은 사회적인 변화와 정의를 향한 소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가난과 억압을 경험한 이들이 사회적인 변화와 불평등 해소를 바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 말씀"은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대화와 행동을 촉구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염원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박완서가 생각한 "한 말씀"은 억압된 목소리, 소통의 부재, 이해와 공감의 부재,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와 정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각하게 된 "한 말씀"....

나는 이 책을 보지는 않았다. 작품의 주제와 깊이는 가볍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잠깐의 이야기 속에도 많은 것을 느꼈고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위에 ChatGPT에게 물어본 책 리뷰를 보고, 아내에게서 들은 내용을 비교해 보면 완전히 많이 달랐다.

아직도 인공지능이 읽어낸 책의 의미와
실제 사람이 감동받아 느끼고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의대생 아들을 잃고 너무나 억울한 상실감에 빠져버린 작가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그가 신에게 부르짖은 말...

"한 말씀만 하소서"....


아무 대답이 없는 신이 원망스럽고 답답했을까?
그 마음의 토로가 얼마나 가슴 절절했을지...
그랬던 그녀가 많은 과정을 거쳐...

마지막 순간에
무릎을 꿇고 변기에 토를 하였다.

무릎 꿇는 자세로 토를 하신 박완서님
(OTL 자세였을 것 같다.)
 
교만했던 자기 안에 있던
이기적이고 악했던 마음을 토해냈다.
절대자 앞에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깊이 있게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처절한 자기발견의 순간이 있을수가..

그때 오히려 신기하게도 작가는 참 평안과 자유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이제 이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구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나..

도저히...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도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아주 아주 조금, 가슴이 아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인생에는 여러 차례,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원망과 슬픈 마음이 우리를
평생을 따라다닐 수 있다.
그런 힘든 일이 또 다시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그런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깊이있는 공감을 해줄 것 같다.


 
 
 
 

300x250
728x90

박완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 소설 개요

이 소설은 1970년에 발표되었으며, 박완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인 김재식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소년으로서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며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 소설은 전쟁, 분단, 빈곤, 사회적인 억압 등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과 사랑, 희망의 가치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은 현실주의적인 묘사와 동시에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생각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박완서의 문학적인 재능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내용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폭넓은 인정을 받았으며, 현대 대한민국 문학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싱아란 대체 무엇일까?

"싱아"는 "옥수수 심부름꾼"이라는 뜻입니다. 소설 "그 많던 싱아"에서 싱아는 주인공 김재식의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옥수수 심부름꾼은 가난한 집안에서 식사를 위해 옥수수를 심어 키우고 수확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많던 싱아"에서 싱아는 가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며, 작품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희망과 인내력을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인내와 힘들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3. 싱아는 옥수수심부름꾼인데 왜 싱아를 먹는다는 표현을 했을까?

 

제목에서 "싱아"는 옥수수 심부름꾼으로서의 싱아뿐만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질문은 작품 전반에 걸쳐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찰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싱아를 먹는다"는 표현은 싱아 자체가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먹고 살아가는지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작품의 주요 주제와 메시지를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생각과 공감을 일깨우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울림을 주는 문구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문구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이 문구는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실제 상황과 그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을 직시하며, 사회적인 불평등과 분단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가난과 부족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억압과 이를 넘어서는 데 대한 묵직한 질문이며, 독자들에게 근심과 공감을 일깨웁니다. 이 문구는 작품의 핵심 주제인 가난, 억압, 사회적인 불평등 등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유도하고, 독자들에게 이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유발합니다.

따라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문구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구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다른 문구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문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가족이지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작은 빛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인내는 힘을 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사랑과 희망은 가져갈 수 있다."
"생존의 의지는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누구나 힘들게 살아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려움이 오래 갈지라도, 우리는 함께하며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


이러한 문구들은 작품 "그 많던 싱아"의 주요 테마와 메시지를 반영하며,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강인함과 희망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부여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5. 박완서씨는 실제로 6.25 전쟁을 경험하셨을까?

박완서 작가는 6.25 전쟁(한국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박완서는 1931년에 태어나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에 20대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 상황과 그에 따른 어려움을 직접 경험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작가로서의 박완서는 전쟁과 사회적인 억압, 가난 등의 주제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쟁과 사회적인 현실의 영향을 깊이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현실적인 경험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전쟁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의 작품은 한국문학의 중요한 역사적인 산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좋은 독서 많이 하세요 :)

300x25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