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4편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시인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시인의 앞선 고백을 보자.
[8]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자랑하고 감사하는 이 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9]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주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녀에게
주의 언약을 떠나지 않고 주의 길을 떠나지 않은 이에게,
왜 이토록 험악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하시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끝까지 주님께 매달린다.
[2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26] Rise up and help us; redeem us because of your unfailing love.』
주님의 인자하심 [해세드] [unfailing love] [끈질긴 사랑, 끊어지지 않는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있는 시인.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며
이게 무슨 해세드인가!
이게 무슨 인자하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랑하신다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게 막아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해결해 주셔야 되는 것이 아닌가?
왜 아무 응답이 없으신가?
이때 이 어려움의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생각이 들 수 있다.
지금 나의 이 프로세스는...
1. 내 죄로 인하여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일까?
2. 나는 주님을 굳게 붙잡으려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게 된 광야인 걸까?
현실 속에서 2가지는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1번은 다음 기회에 다루어보고자 하며 (히브리서 12장)
2번을 중심으로 답을 찾아가보겠다.
하나님은 시편 44편에서 시인의 마지막 부르짖음에 대해서, 로마서 8장으로 화답하시는 것 같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고난들은 자녀이기 때문에 허락하고 계신 프로세스인 것이다.
아빠 아버지가 되어주신 하나님.
이제 우리는 그냥 서자 같은 아들이 아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다 하였는데, 이것은 보통의 양아들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상속자(heir)가 된 것이다.
로마시대에는 황실과 귀족들은 상속할 양아들을 들여서 모든 것을 물려주곤 했다.
이런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존재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고난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이 번역보다는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영문 표현이 더 깊이 와닿았다.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for the good of those
그들의 "선"을 위해서!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good 일까? 그다음 구절에서 그 답이 있어 보인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9] For those God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likeness of his Son, that he might be the firstborn among many brothers.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수 있도록, 예정 (predestine) 하셨다.
오래전부터 하나님은 이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실 때부터, 이 계획을 갖고 계셨다.
자기를 닮은, 신을 닮아 성장해 가는 자녀가 되도록
원대한 꿈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맏아들이신 예수님과 형제라 불리울만큼 예수님을 닮아가길 기대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충분한 고난들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무모한 꿈
그 꿈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려면,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인생에도 주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모양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무게로든 우리에게 그 광야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피해 가려면 하나님은 그 꿈을 포기하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신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
억울한 상황이 없다면, 긍휼을 배울 수 없고,
수치를 당해보지 않고는, 누군가의 상처를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 없이는 인내를 배울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이 어떻게 인내하고 오래 참으셨는지,
어떻게 경청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아버지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어떻게 목표를 이루어가시는지,
어떻게 자기 한계를 깨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동기부여하는지,
어떻게 쉬시는지, 어떻게 쉼을 주는지,
이 모든 것을 배우려면...
어느 정도(?)의 고난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고난이 커지면 원망스럽기 마련이다.
내가 왜 이 고난 속에 들어와 있는지
다 잊어버리고, 그 의미와 목표는 잊혀지고
괴로움만 남을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메세지를 로마서 8장에 남겨주셨다.
(정말 힘든 그 상황이 되면, 이 상자를 열어보렴 ㅎㅎ 하는 느낌으로)
이 고난의 프로세스를 허락하신 그분이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마음이다.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예수님을 닮아가길 바라는 그 기대감과 소망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그 고난의 과정에서도 절대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끊어지지 않는 끈질긴 사랑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응원만 하고 관망하며 계시는 것이 아니다.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본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제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함께 계시며 힘이 되어 주고 계신다.
예수님 닮겠다는 목표... 너무나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관계성이 깨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 로마서 8장의 마무리는 39절인 것 같다.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시편 기자가 44편의 마지막 절에 간절히 구한 내용에 대해서...
[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주님은 이렇게 답하고 계신 것이다.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끊어지지 않는 사랑 속에서 이겨냈을 때, 우리는 어느새 그분의 영광스러운 양자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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