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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여 영생을 얻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5:13) I write these things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0:31)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write. 하는 목적. 

기록된 이 말씀의 힘.

1. 영생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2. 예수님이 구원자(Christ) 이심을 믿게 해준다. 믿음은 영생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다. 

 

결국, 기록된 말씀이 있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믿음이 있어야 영생을 가질 수 있다. 

갖게 된 영생을 확신하는 것도, 이 기록된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말씀 → 믿음 → 영생

 

그러니, "영생"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 가능하다.

 

 

나에게 돈이 정말 있다는 것은 통장을 봐야 알 수 있다.

돈이 정말 가치가 있다는 것은 사용을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래야 가짜 돈이 아니라 진짜 돈임을 알 수 있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내가 가진 돈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어준다.

마치 말씀은 내가 가진 영생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돈을 사용할 때 그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영생의 능력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수 있다.

 

2.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성경 구절을 통해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

요한계시록 3장 20절

요한복음 5장 24절

※ 구원은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이지 감정이나 막연한 바램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3.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떠한 존재가 됩니까?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new creation. 

새로운 피조물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도다.

 

※ 예수님을 영접하여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곧 영적인 갓난아이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4.베드로전서 2장 2절에서 영적인 갓난아이들은 무엇을 사모합니까?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2) Like newborn babies,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 your salvation,

 

아기들은 젖을 흡수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계속해서 흡수해서 영양소를 공급받아야 한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받은 구원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도록 계속해서 자라나는 개념이다.

grow up in your salvation.

in my salvation 안에서, 자랄 수도 있고, 자라지 못하고 멈출 수도 있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무럭 무럭 자라서 성장하는 것과 아프고 병들어 자라지 못하는 것...

똑같이 살아있는 생명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라지 못하는 한 부모의 아기를 보았다.

13살이 될 때까지도 그 아이는 자라지 못하고, 크지 못한 체 누워서 지냈다. 

누구도 그 아이의 나이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겉모습을 보고 알 수 없었다.

 

영적으로는 이러한 일들이 더더욱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여기서 신령한 젖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참고 베드로전서 1장 23절)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1:23) For you have been born again, not of perishable seed, but of imperishable, 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성경에서는 거듭난다는 표현으로도 설명한다.

born again.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피조물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 힘. 새롭게 태어나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신령한 젖에 해당되는 것은 바로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인 것이다. 썩지 않는 양식이다.

이 말씀을 먹고 무럭 무럭 자라나는 아이는 어떠한 인생을 살게 될까? 

 

 

베드로전서 2장의 다음 이야기들 속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그분의 인자하심,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에, 그 말씀을 계속 섭취해 나가는 것이다.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living stone으로 표현되신 예수님

왜 stone일까? 베드로는 반석(rock)이라 부르시고, 왜 예수님은 stone이실까? 

https://chatgpt.com/share/67e7f1e9-fb60-8009-9e26-dea5e78cf315

 

ChatGPT - 산 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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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stone 은 집을 짓기 위해서 정제된 돌들이다. 자연 그대로의 돌이 아니다.

믿는 이들은 이렇게 living stones가 되어서 함께 집이 되어가는 것이다.

먼저 첫 돌이 되어주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분과 함께 우리 모두 하나의 집을 만들어 가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2: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 모퉁이의 머리돌은 corner stone이 맞을까? capstone이 맞을까?

 

(시 118:22)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막 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막 12:10)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모퉁이의 머릿돌은 사실 상당히 아이러니한 표현으로 보인다. 모퉁이에 머릿돌은 두지 않는다. 모퉁이에는 모퉁이돌을 두지 머릿돌을 모퉁이에 두지 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퉁이에 놓여진 머릿돌이라고 표현되어진다.

 

모퉁이에 놓여진 머릿돌이니, 위치는 모퉁이가 맞는데,

그 역활과 의미는 머릿돌만큼 중요하고 높여져야 하는 돌인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성과 정말 맞아보인다. 

가장 높임받아 마땅한 머릿돌되신 예수님이시지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고,
가장 낮아져서 모퉁이의 돌이 되어주셨다. 
그래서 우리가 그 위에 세워질 수 있게 하시고,
기준이 되어주시고, 든든한 버팀목, 주춧돌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되어 버릴 것이다.

 

산 돌이신 예수님

  •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기준이 되는 living stone이고,
  • 어떤 이에게는 stumble하게 하는 rock 이다.

말씀을 듣고 알게 된다면 믿거나 믿지 않거나 되는데, 

몰랐을 때는 상관없겠지만,

듣고 알게 된다면,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생명을 주시시는 기준점이 되는 living stone이 되어 주셔서 점점 집으로 build up 되게 해주시거나,

늘 넘어지고 걸리게 되는 걸림돌이 되게 되는 것이다.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living stone이신 그분이 내게 capstone 

그분으로 인해 선택을 받았고,

왕 같은 제사장(royal priesthood)

그분의 소유된 백성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긍휼을 받는 백성이 되었다.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목표.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의 선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

(2: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선행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말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우리에게 있는 자유를 활용해서 악을 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주었을 때 악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원하여 의를 선택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2:17) Show proper respect to everyone: Love the brotherhood of believers, fear God, honor the king.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1Pt 2:21) 『To this you were called, because Christ suffered for you, leaving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follow in his steps.』

(2: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Pt 2:25) 『For you were like sheep going astray, but now you have returned to the Shepherd and Overseer of your souls.』

 

 

EBS 5과. 예수님을 믿은 후 시작된 우리의 "새로운 삶"

새로운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설명해본다면,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던 우리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예수님께 돌아온 삶

 

 

 

5.요한계시록 1장 3절에서 어떤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

 

 

. 갓난 아이가 자라려면 꾸준히 젖을 먹어야 하듯이 새롭 게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영적인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지 속적으로 섭취하고 배워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자녀로 성장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들을 발 견하고 누리게 됩니다.

 

구원은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in Salvation 가운데, grow up 이 있는 삶이다.

Already but not yet인 것이다.

이미 받은 구원에 감사하며,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고, 살아야 할 분명한 의미와 이유가 있다.

 

Welcom to new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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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1985~ )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작가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읽었던 것은 <용의자X의 헌신>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반전 내용이 재밌긴 했지만, 살인의 동기나 방법이 좀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는 거의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가 최근 가가형사 시리즈나 갈릴레오 시리즈를 영상으로 접하면서 다시 관심이 생겼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전기공학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이공계 관련 지식이 많이 나오는데,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더 돋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에 그의 작품에서 더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심리묘사인 것 같다. 사건을 저지른 인간의 심리와 동기에 대해서 파고드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홈즈나 미스마플과 같이 내가 좋아하는 전통적인 탐정들은 범행의 트릭을 간파하고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에 더해 인간의 본성과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이런 점이 추리소설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어서 부담스러웠지만, 최근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작품목록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을 하는 작가이다. 작품 수가 엄청 많은 것 같은데, 챗GPT에게 물어보니 주요리스트라고 하여 일부 작품을 소개해줬다. 여기에 유성의 인연은 빠져있어서 내가 추가했다.

 

1. 가가 형사 시리즈 (총 12편)

  • 졸업 (1986년)
  • 잠자는 숲 (1989년)
  •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1996년)
  • 악의 (1998년)
  • 내가 그를 죽였다 (1999년)
  •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2000년)
  • 붉은 손가락 (2006년)
  • 신참자 (2009년)
  • 기린의 날개 (2011년)
  • 기도의 막이 내릴 때 (2013년)
  • 희망의 끈 (2019년)
  •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2023년)

2. 시노부 선생님 시리즈 (총 2편)

  • 오사카 소년 탐정단 (1988년)
  • 시노부 선생님, 안녕 (1993년)

3. 웃음 시리즈 (총 4편)

  • 괴소소설 (1995년)
  • 독소소설 (1996년)
  • 흑소소설 (2005년)
  • 왜소소설 (2012년)

4. 명탐정 덴카이치 시리즈 (총 2편)

  • 명탐정의 규칙 (1996년)
  • 명탐정의 저주 (1996년)

5. 갈릴레오 시리즈 (총 10편)

  • 탐정 갈릴레오 (1998년)
  • 예지몽 (2000년)
  • 용의자 X의 헌신 (2005년)
  • 성녀의 구제 (2008년)
  • 갈릴레오의 고뇌 (2008년)
  • 한여름의 방정식 (2011년)
  • 허상의 어릿광대 (2012년)
  • 금단의 마술 (2012년)
  • 침묵의 퍼레이드 (2018년)
  • 투명한 나선 (2021년)

6. 설산 시리즈 (총 4편)

  • 백은의 잭 (2010년)
  • 화이트 러시 (2013년)
  • 연애의 행방 (2016년)
  • 눈보라 체이스 (2016년)

7.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총 4편)

  • 매스커레이드 호텔 (2011년)
  • 매스커레이드 이브 (2014년)
  •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2017년)
  • 매스커레이드 게임 (2022년)

8. 라플라스 시리즈 (총 3편)

  • 라플라스의 마녀 (2015년)
  • 마력의 태동 (2018년)
  • 마녀와의 7일 (2023년)

9. 블랙 쇼맨 시리즈 (총 3편)

  •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2020년)
  •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2023년)
  •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2024년)

10. 녹나무 시리즈 (총 2편)

  • 녹나무의 파수꾼 (2020년)
  • 녹나무의 여신 (2024년)

11. 단편집 및 기타 작품

  • 비밀 (1998년)
  • 게임의 이름은 유괴 (2002년)
  • 호숫가 살인사건 (2002년)
  • 방황하는 칼날 (2004년)
  • 백야행 (1999년)
  • 편지 (2003년)
  • 가면산장 살인사건 (2006년)
  • 유성의 인연 (2008년)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12년)
  • 공허한 십자가 (2014년)
  • 녹나무의 파수꾼 (2020년)
  • 백조와 박쥐 (2021년)

 

유성의 인연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 시리즈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영상으로 볼까 하다가 이번에는 책으로 읽어보자 하여 시작했다. 주인공은 우애가 남다른 삼남매인데,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을 겪는다. 범인은 잡지 못한 채로 미결사건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들이 성인이 되고 뜻밖에 얻은 실마리로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중심 내용 자체는 무거울 수 있지만, 그런 부분은 절제하고 삼남매의 씩씩하고 밝은 분위기가 주를 이뤄 따뜻하고 재미있게 전개된다. 또한 추리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범인찾기의 궁금증도 유발하여 몰입도가 높았다. 

 

TV시리즈 유성의 인연 (OTT)

 

 

소설이 출간된 같은 해에 일본에서 TV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출간되자마자 방송제작 결정이 된 것이니, 이 작품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방송제작되면서 코믹한 부분을 더 많이 살렸다고 하고 결말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하니 더 호기심이 간다.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조만간 시청할 계획이다.

 

  • 주연:
    • 니노미야 카즈나리 (아리아이 코이치 역)
    • 니시키도 료 (아리아이 타이스케 역)
    • 토다 에리카 (아리아이 시즈나 역)
  • 각본: 쿠도 칸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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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가나라는 장소에 두 번 연속 오게 된 곳이었다.

기적이 자꾸 일어나는 장소가 있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이 전해졌지만, 진심으로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오히려 복음과 축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 당시 헤롯왕

동생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세례요한을 죽였던 헤롯왕

이 왕의 최측근이었던 신하는 상당히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이다.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했다는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은 이미 나있었을 것이다.)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인간적인 방법을 다 해보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탄탄대로의 인생이었다면, 이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가나 지역은 가버나움에서 34 km 정도 거리였다. 

가나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다가, 사마리아를 거쳐 다시 가나로 왔다. 

아버지는 가버나움에서 가나로 달려왔던 것이다. 

 

(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48) Jesus therefore said to him, "Unless you [people] see signs and wonders, you [simply] will not believe."

 

예수님은 이 신하에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4: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4:49) The royal official *said to Him,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예수님의 No를 No로 받고 물러서지 마라.

이 포기하지 않는 기도에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왕의 신하의 눈빛에서, 기적만을 바라는 예루살렘 사람들하고는 다른 진실한 눈빛을 보셨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4: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4:50) Jesus *said to him, "Go your way; your son lives." The man believed the word that Jesus spoke to him, and he started off.

 

이 예수님의 말에, 

뭔 소리야. 지금 당장 나랑 가버나움으로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을 수 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강퍆하고 교만한 마음이었다면,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마음을 갖었을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분은 예수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집으로 직접 오시지 않아도, 치유가 이루어졌음을 믿은 것입니다.

믿지 않았다면, 34km를 이동해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4:51) And as he was now going down, [his] slaves met him, saying that his son was living.

 

  • 가나 : 기도가 드려질 때 - 믿음의 기도를 드린 신하
  • 가버나움 : 기도가 응답될 때 - 믿음의 기도의 응답을 받은 아들

 

이 중간 텀이 문제입니다.

이 아버지는 이제 예수님의 손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

기도가 드려지고 응답받기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왕의 신하는 그렇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걸어가면서 확인해야 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멈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다림은 마귀의 공격을 이겨내는 전투의 현장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11:1)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 
(11: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 가버나움 : 실상은 있는데 믿음이 없는 곳
  • 가나 : 믿음은 있는데 실상은 있는 곳

 

떨어져 있던 믿음과 실상이 만나게 된 것이다! 
Now faith is being sure

믿음을 가진 신하와
아들이 치유되었다는 실상을 알고 있는 종의 만남.

 

 

저녁 7시 정도일 때나 둘은 만났을 것이다.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4:52) So he inquired of them the hour when he began to get better. They said therefore to him, "Yesterday at the seventh hour the fever left him."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가나와 가버나움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시야에서는 시간과 공간은 제약이 없습니다.

 

하루 만에, 예수님이 임한 이 집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간증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고 가족이 모두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4: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4:53) So the father knew that [it was] at that hour in which Jesus said to him, "Your son lives"; and he himself believed, and his whole household.

 

예수님은 헤롯왕의 최측근 이 신하의 전 집안이 구원받기를 원하셨고, 또 그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져 나가길 원했습니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 사도행전의 제자 중에 나옵니다. 

이 신하가 전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전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 속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 뜨거운 사막의 가버나움에서 가나로 달려갔던 아버지의 믿음.

 

누군가를 살리려고 하는 진실된 기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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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복음 7:13,14 에서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 우리 앞에 가야만 하는 어떤 두 길이 있습니까? 각각 그 길의 특징은 어떻습니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7:13) "Enter by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way is b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are those who enter by it.
(7:14) "For the gate is small, and the way is narrow that leads to life, and few are those who find it.

 

좁은문 vs. 넓은문

넓은문 :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좁은문 :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길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2) 당신은 지금까지 어느 길을 걸어왔습니까?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일까? 

죄의 길과 생명의 길

 

죄의 길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길

생명의 길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인 길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과 그 속에 살아온 나 자신의 생각이 모든 일의 기준이 되어서 살아왔다. 

20대 초반 예수님을 믿었고, 이 모든 의미를 알고 영접했으나,

그 후로도 많은 경우 나의 삶의 많은 기준들은 내 자신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다. 

갈팡질팡해왔던 것이 분명한 나의 현 상태인 것이다.

 

    3)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처럼 계속 갈팡질팡 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인생이다.

주님이 나에게 주고 싶은 이 생명을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셨나.

 

생명의 길을 선택했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중심으로 맞아들였으나,

계속해서 나의 그 마음과 생각이 주님처럼 되어가고 있나? 보면, 그렇지 않다.

이것조차도 오락가락한다.

 

내가 정말 건강하게 성장해왔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더욱 많이 남겨왔을 것이다.

 

    4)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신은 어느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좁고 협착한지,

넓고 편한 길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보인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어떤 길을 선택하고 사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맺을 열매들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갈라디아서 5장
(5:19)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
(5:21)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5:22) 그러나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
(5:23)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는 것입니다.
(5:2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5:25)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산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5:26) 그러므로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다투거나 미워하지 맙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 (요한복음 14 :6)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but through Me.

 

예수님 = 길, 진리, 생명 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떤 길을 가야되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나?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 = 예수님의 길을 간다는 것, 이것은 어떤 길일까?

 

3. 요한복음 3 : 16에서는 어떻게 해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예수님의 길 = 예수님을 믿는 삶

 

4.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어떠한 축복들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 (요한복음 5 : 24)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게 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

 

5.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 (요한복음 1 : 12)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even] to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receive, 환영해서 맞아들이는 것.

 

6. 요한계시록 3 : 20에서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dine with him, and he with Me.

 

1) 누가 누구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까 ?

예수님이 나의 문을 두드리신다.

 

2)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들어오시기 위해서

 

3) 문을 연다는 것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

예수님을 믿는 것.영접하는 것

 

4) 당신의 문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을 믿는다는 것...

그분께 문을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분을 환영해서 맞이하는 영접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 위해서 집문을 열어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의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1853~1854년)

 

이 그림 처럼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대상 : 누구든지... 차별이 없다.

조건 :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

 

그래서 그림을 유심히 보면 문고리가 밖에는 없고 안에만 있다. 

즉 그 음성을 들은 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선택인 것이다.

(물론 이 선택에는 성령의 놀랍고 비밀스러운 도움이 동반된다.)

 

7. 그러면 실제로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

(로마서 10 : 9,10)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9) that if you confess with your mouth Jesus [a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shall be saved;
(10:10) for with the heart man believes, resulting in righteousness, and with the mouth he confesses, resulting in salvation.

 

그분이 들어오실 수 있으려면,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여야 하나? 

 

그분을 내 마음의 "주인(Lord)" 으로 모셔드려야 한다.

그렇게 내 입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 여기서 바울이 "예수를 주(Lord, κύριος)로 시인하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로마 황제를 표현하는 퀴리오스라고 고백하는 것은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다 라고 해석될 수 있었다.
  • 바울이 로마 제국 내에서 이 서신을 쓸 당시,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황제의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퀴리오스"로 시인하는 것은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주권자이시다"**는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박해의 원인이 되었으며, 실제로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카이사르가 주다"라고 고백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다(Kyrios Iēsous)"라고 고백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주인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제는 내 인생의 시간, 물질, 에너지 모든 것에 대한 선택에서

나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EBS 1과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계약(Convenant)을 맺으신 하나님.

EBS 2과에서, 선악과를 먹고 계약이 파기되었고,

인간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옮겨졌다는 의미였다.

이사야 53:6에서도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목자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양이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제 갈길을 간 상태이다. 

 

인간은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자기의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야 한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업혀서,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지만,

커서는 부모가 강제할 수 없는 스스로의 길이 있다.

그 어느 부모도 스스로의 길을 가는 자식이 제 갈길로 악한 길로 가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스스로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주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선한 길을 선택하길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이제 하나님은 다시 계약을 맺자고 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여

다시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기준대로 선과 악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살겠다고 고백하면,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 자녀됨과 죄사함의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의지와 더럽혀진 양심으로 걸을 수 없는 그분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와 격려를 성령을 통해서

주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3) Therefore I make known to you, that no one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is ac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로마서 8:26)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8:27)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3:5)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14:26) 그러나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Co 2:12) 『We have not received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ay understand what God has freely given us.』

 

영접은 결국 우리의 선택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안타까워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

성령의 일하심은 바람처럼 어디서 올지 모르고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그 소리가 들려오듯,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들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생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동행해주시며 우리를 보살펴주실 것이다.

 

영접한다는 것, 정말 어려운 결단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주저주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AS 확실하게 해줄테니, 안심하고 영접해도 된다!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우리 마음은 평생을, 우리 자신이 기준이 되어 살아왔다.

나 자신은 그동안 어떠한 기준으로 살아왔나? 돌아보면,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 살아왔고,

내 욕구가 기준이 되어 살아왔다.

이런 나의 자아가 형성되게 한 가족과 세상 모든 것들이 기준이 되서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심판자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의롭고 선한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과정은 이전의 "나는 죽었다!" 라고 이야기할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전의 내가 죽어야 한다니,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늙은 니고데모의 반응처럼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내 생각과 의지, 가치관... 이 모든 것의 기준들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당연하게도,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새로워졌지만, 육신은 그대로이므로, 여전히 옛습관은 남아있고, 많은 유혹들이 내일 또 찾아올 것이다.

그 때마다 내가 했던 결단을 돌아보고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교제하면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하고 어리석고 강팍한 나를

도와주지 못하실 만큼 능력이 없으신 분도, 사랑이 없으신 분도 아니시다.

 

. 다음과 같은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모셔들일 수 있 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께서 저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젠 이 큰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제 마음에 오셔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저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영접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늘의 천사들이 축하를 하며 기뻐한다고 하셨다.

(눅 15:10)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Lk 15:10) 『In the same way, I tell you, there is rejoicing in the presence of the angels of God over one sinner who repents."』

 

이 진실된 고백을 우리 주님은 정말 기뻐하신다. 

 

그래서 실제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까지 내려가시는 고난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하신다. 정말 멋지시다.

 

이제 주님께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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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이라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활용하여 계속적인 성장의 원동력을 삼기도 한다.)

 

비교를 계속하면서

우울해지고, 분노가 느껴지고,

 

전 세계에서 TOP 10%에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낀다.

 

돈이 가장 필요한 그때에 돈이 없고,

사람이 가장 필요한 그 때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난처하고 힘든 상황이 옵니다.

 

2000년 전 예수님도 동일한 상황의 집에 있게 되었다.

 

(2:1) 이틀 후에 갈릴리 가나에 결혼식이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2) 예수님과 제자들도 초대를 받아가셨다.

 

아주 보잘것없는 마을인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초대를 받았다.

마리아가 host 역할을 했던 마리아의 친인척 관계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2: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자

 

신부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 잔치가 벌어졌다.

충분한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다.

일주일 동안 게스트들을 먹고 마실 음식과 포도주 준비가 큰 부담이었다.

 

예측보다 훨씬 많은 하객들이 오게 되었던 것이다.

신랑 신부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기뻐해야 할 잔치의 시간에 정말 난처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상황이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남모르는 고민과 괴로움, 내실의 부족함 속에 괴로워하게 되는 상황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에게 이 얘기를 하게 되었을까? 

어려서부터 예수님이 보여왔던 모습들을 생각했을 때 그분에게는 뭔가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표적 속에서 아이를 잉태하였고, 어려서 서기관들과의 대화, 주님이 보여주셨던 많은 사건들 속에서 예수님에게 특별한 믿음과 기대감이 있었을 것이다.)

 

뜻밖의 예수님의 대답...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2:4) 예수님은 `어머니,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내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2:4) And Jesus *said to her, "Woman, what do I have to do with you? My hour has not yet come."

 

"여자여" = 왕이 왕후를 쓸 때 부르는 존칭어입니다. 

거절하셨던 예수님.

공생애를 계획하며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라 생각지 않았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이 거절에 아쉬운 반응을 할 만도 한데, 마리아의 대답이 맥락이 없다.

(2:5)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러 주었다.
(2:5) His mother *said to the servants, "Whatever He says to you, do it."

 

황당하게 예수님은 No 했는데,

마리아는 Yes 인 것처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간다.

 

우리말 "괜찮다" = 관계하지 아니하다.

 

우리나라는 수신자가 알아들어야 하는 표현이 많았다. 

 

에드워드 홀의 언어에 대한 설명

Low Context : 맥락이 필요 없음. 직설적

High Context : 함축적이고 돌려 말하는 문화.  (히브리문화는 동양 문화에 더 가깝다.)

 

동양사람 -> 서양사람들은 직설적이라 무례하다 여겨지고

서양사람 -> 동양사람들은 답답하다고 한다. 

 

예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난 예수님도 처음에는 거절하셨다가 이후에 응답해 주신다.
거절의 과정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

 

때로는 No 하시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마리아를 본받아 Yes 인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를 무시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끝 까기 매달리는 기도의 배짱을 키워야 합니다.

 

몇 번 해보고 소식이 없으면 지레 포기해 버립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기대한 방식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는 겁니다.

 

항아리(장독) 같은 그릇 = 물만 담그던 것이었다.

 

(2:6) 거기에는 유대인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각각 물 두세 통 드는 크기였다. (2:7)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워라.' 하시자 그들은 아구까지 물을 가득 채웠다.

 

하나님을 모르는 하인들도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데,

자녀인 우리도 순종했을 때 경험하게 될 기적은 엄청날 것입니다.

 

(2:8) 그리고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이제 떠다가 잔치 책임자에게 갖다 주어라.' 하시자 하인들은 그대로 하였다.
(2:9) 잔치 책임자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몰랐으나 그것을 떠 온 하인들은 알고 있었다. 잔치 책임자는 신랑을 불러
(2:9) And when the headwaiter tasted the water which had become wine, and did not know where it came from (but the servants who had drawn the water knew), the headwaiter *called the bridegroom,

 

순종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H2O -> C2 H5 OH 이러한 변화가 갑자기 일어난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 ㄹ것이다. 

 

결정적인 부족함의 순간에, 우리 주님께 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인생에 포도주가 부족하십니까?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시기 원하십니다.

 

물 : 손을 씻는 데 정경의식으로 사용했습니다.

물에서 포도주가 되는 것.

약간의 교육과 개선의 의미가 아닙니다.

180도 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인격의 본질을 바꾸시는 분이 우리 주님입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지만,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신앙이 필요합니다.

 

 

2.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2:10) `흔히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군요' 하였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서 마지막까지도 좋은 포도주임을 알고 칭찬했다.

 

예수님은 시간이 갈수록,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더욱더 온전해지는 것. 

예수님이 주시는 

 

 

3. 주님은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주 최고의 중매를 해주는 것입니다.

좋은 결혼을 하는 것도 기쁨이지만, 그것을 맺어주는 기쁨도 정말 큽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이런 결혼식처럼 행복해지는 시간임을 의미합니다. 

 

베풀 것이 없어서 괴로워했던 신랑신부의 집에,

나누어도 부족함이 없는 풍성함을 베풀어주셨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이 확실해졌다. 

포도주의 은혜는 누리면서도 믿음을 갖는 사람들은 제자들이었다.

표적인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해석할 수 있습니다.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2:11) This beginning of [His] signs Jesus did in Cana of Galilee, and manifested His glory, and His disciples believed in Him.

 

 

예수님이 안 계셨으면, 이 자리는 엉망이 될 잔치였던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그때에,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No 하신 것 같더라도, Yes라고 믿고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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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는 때문에 하나님과 단절되어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서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가운데 서 영원히 살게 됨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일을 해결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또한 알았습니다.

 

 

1. 이사야 53 : 6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Is 53:6) 『We all, like sheep, have gone astray, each of us has turned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s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해결해주셨다. 그런데,

그 해결의 방법이 중요한데...

(1) 사면시킨다. (그냥 없던 일로 해주겠다.)

(2) 형벌 받을 누군가를 따로 정해서 그가 형벌을 받게 한다. 이를 통해서 사면을 시킨다.

 

(1)은 "공의"의 하나님의 공정성에 어긋나게 된다.

laid on him. 하셨다.

예수님에게 얹어버리셨다.

양은 죄를 전가받으면, 죽게 된다. 

 

레위기 1:6-9 (번제의 과정)

6 그는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버려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버려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2.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말했습니까? (요한복음1:29)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29) The next day he *saw Jesus coming to him, and *said,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하나님이 직접 예비하신 양.

사람들이 준비해오는 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신 양.

 

 

3. 하나님께서 죄악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 (요한복음 3 : 16)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처럼(so loved) 사랑하셨다. 얼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일까?

어린 양과 제사드리러 온 사람, 당연히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양을 잡는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과 죄를 지은 사람 중에는 누가 죽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아들을 이렇게 죽이실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로마서 5 : 8)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 Christ died for us.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되고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되있는 상황인데도,

이런 우리를 돕기위해서, 이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Christ died for us.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5:6) For while we were still helpless, at the right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5: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Christ died for us.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5:10) For if while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we shall be saved by His life.

(5: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5. 베드로 전서 3 : 18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또 하나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참고 14 : 6)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와의 "교제" 가 회복되도록.

 

다시 복습해보자. "물"은... "관계에서 오는 사랑과 신뢰" 

성경에서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물은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훨씬 더 본질적으로 인간을 존재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관계의 회복을 하나님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과 다름없는 그 독생자 아들을 죽이실 만큼.

 

6.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어떻게 되셨습니까? (고린도전서 15 : 3,4 ; 9 : 22)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15:3) For I delivered to you as of first importance what I also received,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15:4) and that He was buried, and that He was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7. 예수님이 다시 사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5:17)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worthless; you are still in your sins.

1) 믿음이 헛되고

2)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

 

부활이 갖는 의미.

죽음이 갖는 의미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죽음은 이 세상 모든 역사 가운데 있었던 모든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가장 큰 저주이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존재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도, 결국은 모두 동일하게 이 죽음을 향해서 간다. 

 

솔로몬도 결국은, 이렇게 지혜자든 우매자든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됨을 이야기한다.

(전 2:14)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전 2:16)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 누구도 이 죽음의 고통과 저주에 대해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해석은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죽음 자체가 극복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존재가 없었다.

 

그런데,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 인류 역사 가운데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예수님은 믿는다 하면서 부활은 믿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헛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

 

죄를 사하시기 위한 죽음을 당하셨다.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러나 부활이 없다면,

그분이 죄를 이기셨다? 죽음을 이기셨다? 

이런 메세지는 우리에게 주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분 또한 죽음의 거대한 어둠 안에 삼켜지셨다 라고 생각될 것이다.

부활의 그 능력이 더 이상 우리를 죄가운데 머무르지 않고,

죄의 지배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하신다.

 

 

그래서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죄를 위해서 부활하신 그분은...
우리 인생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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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로움부 장관이 있었다. 

영국인구 15% 정도가 외로움에 시달렸다.

일본인구 146만명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우리나라도 공식집계로 4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청소년, 노인층에 있던 이런 인구가 점점 더 높아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외로워지는 일들이 생긴다.

1500만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시대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외롭다고 함부로 사람을 만나서는 안된다.

 

우리의 외로움을 하나님이 아신다.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일본에서 선교사들의 자녀들이 많은 이지메를 당한다고 합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4:15)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cannot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One who has been tempted in all things as [we are, yet] without sin.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

 

외로움의 시험 속에서, 극복하고 승리하신 예수님.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수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지지율이 계속해서 올라가는데, 그들을 가지고 세력을 만들거나 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그들의 근본의 동기가 어떤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

외로움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트니 휴스턴

세상에는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과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외롭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곤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모든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습니다.

 

편견없이 나를 지지해질 수 있는 관계성

공감해줄 수 있는 마음과 

성경적인 지혜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섣불리 깊은 마음을 나누어선 안됩니다.

 

 

"십자가"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6) As a result of this many of His disciples withdrew, and were not walking with Him anymore.
(요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 Jesus said therefore to the twelve, "You do not want to go away also, do you?"

 

수천명이 빠져나가고, 12명만 남은 것입니다.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6:68)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words of eternal life.

 

이렇게 주님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했던 베드로.

 

그러나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가장 외롭게 만들었던 것은 군중들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던 이 제자들이었다.

 

야고보와 요한은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7) And they said to Him, "Grant that we may sit in Your glory, one on Your right, and one on [Your] left."

 

결국은 예수님을 출세의 수단으로 따라다녔던 것이 아닌가!?!?

 

 

보통 때는 혼자 기도하지만,

너무 힘들 때는 같이 기도하길 원하게 됩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나와함께 깨어서 기도해줄 수 없느냐?

여러분의 위기의 순간에 함께 기도해주지 않는 것을 보면...얼마나 큰 외로움으로 다가왔을까?

(막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4:38) "Keep watching and praying, that you may not come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예수님께서 그들의 최선을 믿어주시는 것.

본심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믿어주시는 예수님.

 

대놓고 배신하는 사람한테 상처받지 마세요.

그가 정말 원하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요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 16:32) "Behold, an hour is coming, and has [already] come, for you to be scattered, each to his own [home,] and to leave Me alone; and [yet] I am not alone, because the Father is with Me.

 

같은 외로움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순간" 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These things I have spoken to you,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e world you have tribulation, but take courage; I have overcome the world."

 

계집종 앞에서 세번을 부인하는 베드로.

눈 빛이 마주치는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분노의 눈빛으로 베드로를 보지 않으셨다.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너는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랬던 것이다.

 

통곡하고 회개하는 베드로.

나중에 용기있게 십자가에 달리는 베드로.

 

카라바조 "도마의 의심"

 

도마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꼭 그 자리에 없던 이 도마.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도 끝까지 의심하고 그 상처마저 확인하려고 했던 도마

그를 믿어주시고 받아주시고 보여주신 예수님. 

결국 도마는 평생을 복음전하다가 인도에서 순교합니다.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And in the early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He arose and went out and departed to a lonely place, and was praying there.

 

같은 고독이어도, 예수님 선택한 고독은 자신이 선택한 고독이었습니다. 

한밤중의 고독과 새벽의 고독은 다릅니다.

 

새벽의 고독은 영적으로 깊은 교제로 들어갑니다. 

 

교회 안에서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도 그런데 교회가 잘 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모든 관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십자가의 힘이 있습니다.

기대를 하면 무너지게 됩니다.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오히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과 기도를 집중합시다.

 

예수님은 사람한테는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받은 은혜를 베풀겠다라는 마음이셨다.

고독하셨지만, 외롭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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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이기는 일

아이를 낳는 일

병에서 회복하는 일

풍랑에서 구원받는 일

 

일본은 원의 문화 -> 복수

한국은 한의 문화 -> "풀어야 한다"

 

한 많은 한 민족.

서양은 새가 노래한다 하지만,

우리는 새가 운다고 표현한다.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존재 앞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감정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갖는 한.

 

"내가 못배운 한을 풀어다오"

 

맺힌 한을 제대로 풀지 않으면 

 

우리 민족만 한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통해서 한을 풀어내는지 보게 됩니다.

 

"한나" = "한맺힌 나"

 

자기를 끔찍히 사랑해주는 엘가나라는 남편이 있었다. 

엘가나가 부닛나라는 후처를 들여왔다.

 

아들들, 딸들, 최소 4명이상을 낳은 것이다.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7] And it happened year after year, as often as she went up to the house of the LORD, she would provoke her, so she wept and would not eat.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
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한나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던 것이다.

 

상처를 잘 치료해야 하는데, 제대로 다루지 않으니, 

문제를 문제화시키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상처를 제대로 처리하면 별이 되지만,

상처를 제대로 처리 못하면 한이 되어 버린다.

 

미국 대통령 가필드 저격을 당했는데,

췌장에 박힌 총알이 아닌,

상처를 잘못 건드리는 과정에서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만 우리의 한을 풀 수 있습니다. 

 

한나의 인생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

 

1. 간절한 기도였다.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0] And she, greatly distressed, prayed to the LORD and wept bitterly.

 

용건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쏟아내야 합니다.

 

2. 서원기도를 하였다.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하겠노라 하는 나실인의 기도였다.

평생 또는 부분적으로 진행을 하곤 했다.

몇년간을 기도하며 마지막 클라이막스로 이 기도를 하게 되었다. 

 

 

3. 끈질긴 기도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2] Now it came about, as she continued praying before the LORD, that Eli was watching her mouth.

 

계속해서 기도했던 한나.

기도는 집중력을 가져야 합니다.

 

 

4. 은밀한 기도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은밀하게 기도했던 한나.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과 나만 아는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 고백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5. 영적 지도자의 인정과 축복을 받는 기도

 

술취했다고 오해한 엘리.

술끊으라고 하는 그 말에 속이 상했던 한나.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엘리의 축복기도를 받고나서, 

비로소 응답받았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이 기도가 쌓이고 쌓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한나.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3살 때 주의 종으로 드리기 위해서 나아온 한나 

 

자식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내려놓게 하시는 하나님. 

사무엘 사사시대를 종식하고 왕조시대를 여는 핵심적인 지도자 역활.

 

브닌나를 꺾는 것이 한나의 목적이 아닙니다.

형제들에게 복수하는 것이 요셉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미션에 집중하는 겁니다.

 

사무엘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멈추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했던 것이다.

 

두 차례의 원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나가이 다카시 박사

<아버지의 목소리>

나가사키는 가장 많은 크리스챤이 있던 곳이었다. 

검을 취하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일본의 죄에 대한 회개를 제대로 했던 사람.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임을 호소하기 전에 이 전쟁의 책임이 일본에게 있음을 이야기하며 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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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풍성하지 않을까? 

 

"물" 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고, 나무가 땅에서 나왔듯,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서 창조되었다.

 

우리 인간에게 "물"은 대체 무엇일까??

 

"물"의 특징

ㄴ 3일간 먹지 못하면 바로 죽을 수 있다.

ㄴ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조건

 

"돈", "쾌락", "재미", 

 

다른 것이 없다고 죽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살았다 해도 너무나 메마르고 생명력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물이다.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2:13) "For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evils: They have forsaken Me,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To hew for themselves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 hold no water.

 

대체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은 정확히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

거꾸로 없으면 점점 메말라가고 결국 살았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을 살게 되는 요소.

 

그 물이 대체 무엇일까? 

하나님을 닮아 갖고 있는

인간의 형상, 지식, 감정, 의지,

내 영혼이 참된 만족과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에너지의 근원 --- 그것이 물이다.

 

관계성 속에서,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느낌,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

누군가 나를 소중히여겨준다는 느낌, 누군가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마음.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든 다른 어떤 것들도 우리에게 "물"이 되어 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이다.

 

그런데 이것을 깨뜨리기 시작한 사건이 있다.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렸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불의하고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거나 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뭔가 불합리하게 대하려는 존재다. 이러한 의심을 심어주어서 그들의 범죄를 정당화 시킨다.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59:2) But your iniquities have made a separation between you and your God, And your sins have hidden [His] face from you, so that He does not hear.

 

2. 다음 구절들에서는 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이사야 53:6, 예레미야 2:13)

"물"은 이렇게 꼭 필요한 것인데,

깨끗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좋은 물이 없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물을 찾게 된다. 

예레미야 2장 13절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2:13) "For My people have committed two evils: They have forsaken Me, The fountain of living waters, To hew for themselves cisterns, Broken cisterns, That can hold no water.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 대신에 더 좋아 보이는 물을 찾아가고, 안타깝게도 그 웅덩이들은 물을 오래 가두지 못한다. 

터져있기 때문이다.

 

 

3. 누가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까? 그 모든 사람 중에 당신도 포함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유를 써보십시오.  (막 7:21-23, 요일 3:15, 마 5:27-28)

 

물이 썩고, 더럽혀진 것을 계속해서 공급받게 되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까? 

 

마가복음 7장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요일 3장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마 5장 
(5: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우리 인생의 나무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내가 먹고 흡수하고 있는 생수는 성령이라고 하셨다. 

( (요 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의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우리 삶의 열매는 정해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롬 12:2 처럼 잘 분별해야 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라는 문제를 간과하실 분이 아니시다. 

 

"지옥",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각기 제 길로 가게 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시는 예수님. 

 

사 53:6 처럼

각기 제 길로 간 양처럼, 죽을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것이 바로 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형벌은 왜 필요할까?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형벌을 믿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폭력과 복수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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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새벽출정호의 항해> 에서 어떤 섬에 이르렀을 때,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이 섬에 이르면 모든 꿈이 이루어집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곳? 여기가 좋은 곳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꾸게 되는 악몽까지, 가장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2가지로 바라보게 된다.

 

두려움 : 미래에 있을지 모를 상처에 대해서 걱정.

성경에 366번이나 나온 "두려워 말라" 라는 말씀.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의 대상만 바뀌어 왔을 뿐이다.

크고 작은 두려움에 눌려있습니다.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두려움에 예외는 없다.

남의 두려움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의 증상들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상태가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을 봤을 때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두려움들에 휩쌓여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겠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깁니다.

가진 것이 많아질 수록 두려움도 커집니다.

잃을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커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현상유지를 추구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둬두는 정신적인 감옥이 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기에 기회를 계속 놓치게 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뭔지 모르던 시절,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을 때,

손에 장갑을 끼고 컴퓨터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보스 포럼에서 티머시 스나이더

한국은 달라진 위상에 비해 그에 걸맞지 않은 약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나라가 미국과 한국입니다.

 

 

성도들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이유? 

BC 2500년경

세계 최강대국이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을 당한 상황

70년 포로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인들은 모두 해방이 되었다. 

 

두려움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초토화된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뭐하나.

 

시리아 난민들은 이제 돌아갈 기회가 생겼는데도, 가봐야 소용없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수백년 전에 예언을 주셨다. 

 

거절 당한다는 것.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난민이 되면, 거절감이 국가적으로 있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라 하셨다.

내가 너를 아브라함으로 보겠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 41:8) 『"But you, Israel, My servant, Jacob whom I have chosen, Descendant of Abraham My friend,』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문제가 사라지거나 상황이 좋아지거나 하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달라졌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anxiously look about you,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surely I will help you, Surely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미래를 너무 예측하려고 할 필요없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인생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신비한 힘이 하늘로부터 옵니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실제적으로, practical 한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늘의 특수부대, 천사들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대충 붙드는 것이 아니라 전력투구해서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Surely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이 손에 붙들리려면, 

약한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 거룩하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시간과 유튜브나 TV를 보는 시간보다 적다면, 두려움의 영향력은 더욱 더 커질 것입니다. 

 

26년으로 무속인으로 살다가 회심하여 집사님이 되신 분
"나를 찾아오셨던 40%가 크리스챤들이었다."
"당신들은 왜 하나님 믿으면서 점을 보러 오십니까?" 했었다. 
크리스챤이 되었으면 팔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팔자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더 많이 듣기를 바랍니다.

 

(사 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사 51: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A people in whose heart is My law;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an, Neither be dismayed at their revilings.』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 분별력을 줍니다. 

 

뛰어난 바다의 선장은 먹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보면 이것이 피해야 할 태풍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용기와 무모함은 다릅니다.

 

크리스챤이 공부 안하면서, 시장 조사 안하면서,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입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응답조건은,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7] "The afflicted and needy are seeking water, but there is none, And their tongue is parched with thirs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Myself, [As] the God of Israel I will not forsake them.

 

불쌍한 사람 모두가 구원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상하지만, 간절한 사람이 구원을 경험합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이게 아니라
오늘 주시는 그 은혜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부르짖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힘든 길일 줄 알았다면 오지 못했을 것이다. 

믿음의 여정은 늘 위험이 

 

싱글 때보다 결혼할 때,

자식을 나을 때,

상처받을 일도 많고 두려움도 많습니다.

힘들 것이고 실패하기도 할 것이지만, 용기있는 사람이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선택의 순간이 두려웠습니다.

두려웠다고 해서 타석에 안나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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