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1. 마태복음 7:13,14 에서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 우리 앞에 가야만 하는 어떤 두 길이 있습니까? 각각 그 길의 특징은 어떻습니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7:13) "Enter by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way is b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are those who enter by it.
(7:14) "For the gate is small, and the way is narrow that leads to life, and few are those who find it.

 

좁은문 vs. 넓은문

넓은문 :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좁은문 :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은 길이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다.

 

    2) 당신은 지금까지 어느 길을 걸어왔습니까?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일까? 

죄의 길과 생명의 길

 

죄의 길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길

생명의 길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인 길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과 그 속에 살아온 나 자신의 생각이 모든 일의 기준이 되어서 살아왔다. 

20대 초반 예수님을 믿었고, 이 모든 의미를 알고 영접했으나,

그 후로도 많은 경우 나의 삶의 많은 기준들은 내 자신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다. 

갈팡질팡해왔던 것이 분명한 나의 현 상태인 것이다.

 

    3)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처럼 계속 갈팡질팡 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인생이다.

주님이 나에게 주고 싶은 이 생명을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셨나.

 

생명의 길을 선택했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중심으로 맞아들였으나,

계속해서 나의 그 마음과 생각이 주님처럼 되어가고 있나? 보면, 그렇지 않다.

이것조차도 오락가락한다.

 

내가 정말 건강하게 성장해왔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더욱 많이 남겨왔을 것이다.

 

    4)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당신은 어느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좁고 협착한지,

넓고 편한 길인지,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보인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어떤 길을 선택하고 사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맺을 열매들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갈라디아서 5장
(5:19)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
(5: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
(5:21)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5:22) 그러나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
(5:23)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는 것입니다.
(5:2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5:25)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산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5:26) 그러므로 우리는 잘난 체하지 말고 서로 다투거나 미워하지 맙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 (요한복음 14 :6)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but through Me.

 

예수님 = 길, 진리, 생명 이라고 표현하셨다.

어떤 길을 가야되냐?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나?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 = 예수님의 길을 간다는 것, 이것은 어떤 길일까?

 

3. 요한복음 3 : 16에서는 어떻게 해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예수님의 길 = 예수님을 믿는 삶

 

4.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어떠한 축복들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 (요한복음 5 : 24)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게 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다.

 

5.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 (요한복음 1 : 12)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even] to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receive, 환영해서 맞아들이는 것.

 

6. 요한계시록 3 : 20에서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3:20)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dine with him, and he with Me.

 

1) 누가 누구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까 ?

예수님이 나의 문을 두드리신다.

 

2)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들어오시기 위해서

 

3) 문을 연다는 것은 곧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

예수님을 믿는 것.영접하는 것

 

4) 당신의 문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분을 믿는다는 것...

그분께 문을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분을 환영해서 맞이하는 영접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친구를 집에 데려오기 위해서 집문을 열어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의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1853~1854년)

 

이 그림 처럼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대상 : 누구든지... 차별이 없다.

조건 :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것.

 

그래서 그림을 유심히 보면 문고리가 밖에는 없고 안에만 있다. 

즉 그 음성을 들은 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선택인 것이다.

(물론 이 선택에는 성령의 놀랍고 비밀스러운 도움이 동반된다.)

 

7. 그러면 실제로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

(로마서 10 : 9,10)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9) that if you confess with your mouth Jesus [a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shall be saved;
(10:10) for with the heart man believes, resulting in righteousness, and with the mouth he confesses, resulting in salvation.

 

그분이 들어오실 수 있으려면, 나의 마음은 어떤 상태여야 하나? 

 

그분을 내 마음의 "주인(Lord)" 으로 모셔드려야 한다.

그렇게 내 입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 여기서 바울이 "예수를 주(Lord, κύριος)로 시인하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로마 황제를 표현하는 퀴리오스라고 고백하는 것은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다 라고 해석될 수 있었다.
  • 바울이 로마 제국 내에서 이 서신을 쓸 당시,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황제의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퀴리오스"로 시인하는 것은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주권자이시다"**는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박해의 원인이 되었으며, 실제로 로마 당국은 기독교인들에게 "카이사르가 주다"라고 고백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다(Kyrios Iēsous)"라고 고백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주인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제는 내 인생의 시간, 물질, 에너지 모든 것에 대한 선택에서

나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EBS 1과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계약(Convenant)을 맺으신 하나님.

EBS 2과에서, 선악과를 먹고 계약이 파기되었고,

인간이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옮겨졌다는 의미였다.

이사야 53:6에서도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목자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양이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제 갈길을 간 상태이다. 

 

인간은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자기의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야 한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업혀서,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지만,

커서는 부모가 강제할 수 없는 스스로의 길이 있다.

그 어느 부모도 스스로의 길을 가는 자식이 제 갈길로 악한 길로 가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스스로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주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선한 길을 선택하길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이제 하나님은 다시 계약을 맺자고 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여

다시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의 중심이 되어,

하나님의 기준대로 선과 악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살겠다고 고백하면,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 자녀됨과 죄사함의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의지와 더럽혀진 양심으로 걸을 수 없는 그분의 길을 따라가도록 용기와 격려를 성령을 통해서

주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12:3) Therefore I make known to you, that no one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is ac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로마서 8:26)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8:27)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4)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묻자
(3:5)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14:26) 그러나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Co 2:12) 『We have not received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that we may understand what God has freely given us.』

 

영접은 결국 우리의 선택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안타까워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

성령의 일하심은 바람처럼 어디서 올지 모르고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그 소리가 들려오듯,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들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이다. 

평생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동행해주시며 우리를 보살펴주실 것이다.

 

영접한다는 것, 정말 어려운 결단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주저주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AS 확실하게 해줄테니, 안심하고 영접해도 된다!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우리 마음은 평생을, 우리 자신이 기준이 되어 살아왔다.

나 자신은 그동안 어떠한 기준으로 살아왔나? 돌아보면,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 살아왔고,

내 욕구가 기준이 되어 살아왔다.

이런 나의 자아가 형성되게 한 가족과 세상 모든 것들이 기준이 되서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심판자의 위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의롭고 선한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과정은 이전의 "나는 죽었다!" 라고 이야기할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전의 내가 죽어야 한다니,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늙은 니고데모의 반응처럼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내 생각과 의지, 가치관... 이 모든 것의 기준들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다시 또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당연하게도,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새로워졌지만, 육신은 그대로이므로, 여전히 옛습관은 남아있고, 많은 유혹들이 내일 또 찾아올 것이다.

그 때마다 내가 했던 결단을 돌아보고 내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교제하면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하고 어리석고 강팍한 나를

도와주지 못하실 만큼 능력이 없으신 분도, 사랑이 없으신 분도 아니시다.

 

. 다음과 같은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모셔들일 수 있 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께서 저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젠 이 큰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제 마음에 오셔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고

저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영접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늘의 천사들이 축하를 하며 기뻐한다고 하셨다.

(눅 15:10)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Lk 15:10) 『In the same way, I tell you, there is rejoicing in the presence of the angels of God over one sinner who repents."』

 

이 진실된 고백을 우리 주님은 정말 기뻐하신다. 

 

그래서 실제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지옥까지 내려가시는 고난을 당하셨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하신다. 정말 멋지시다.

 

이제 주님께 충성!

300x250
728x90

약속의 말씀을 주신 때와,

그것이 성취되는 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의 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관심이 있으시긴 할까?

 

믿음이 없던 것이 아닌데,

믿음이 바이러스에 걸린 상태.

 

믿음의 반대가 불신이라면,

의심은 불신으로 가는 단계인 것이다.

 

믿음은 소망으로,

불신은 두려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의심이란 소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단계이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For through the grace given to me I say to every man among you not to think more highly of himself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 as to have sound judgment, as God has allotted to each a measure of faith.』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잉태되기까지,

마귀는 이것을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은 영적인 영웅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 입니다.

 

(롬 4:18-19)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18-19)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기도응답을 받기까지 25년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차선책이 큰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 때마다 영적인 Lesson을 가르쳐주셨고, 믿음은 더욱 성장해갔다.

믿음을 더욱 더 업그레이드 시켜서
이 약속을 받을만한 그릇으로 성장시켜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3가지 차선책이 온전한 믿음을 방해함.

 

1. 조카 롯 : 세상적 영악함에 의지함

부유한 나라 애굽에 다녀오더니, 자기 사람, 자기 재산을 만들기 시작했고,

서로 간에 싸움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양보하고 롯이 자기의 길을 가도록 함.

혹시 롯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그 롯이 떠나가버렸습니다.

롯이 떠나고 나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

(창 13:14-16)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 13:14-16) 『[14] And the LORD said to Abram, after Lot had separated from him, " Now lift up your eyes and look from the place where you are, northward and southward and eastward and westward;
[15] for all the land which you see, I will give it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forever.
[16] "And I will make your descendants as the dust of the earth; so that if anyone can number the dust of the earth, then your descendants can also be numbered.』

 

롯 같은 존재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보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오는 축복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롯을 의지했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적 영악함, 물질 만능주의의 영향을 롯이 보여주고 있다. 

롯이 떠나간 빈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욱 강력히 임했다. 

 

 

2. 엘리에셀 : 마음에도 없는 옵션에 안주하려 함.

4개국 연합국의 공격 속에 위기에 처한 롯

롯을 구하기 위해서 급습한 아브라함.

고대 중동에서 전설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된 아브라함

연합국들의 공격 속에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은 계속 염려와 의심이 들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을 때는 하나님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After these thing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saying, "Do not fear, Abram, I am a shield to you; Your reward shall be very great."』

 

이런 위대한 약속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썰렁한 반응.

 

(창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창 15:2) 『And Abram said, "O Lord GOD, what wilt Thou give me, since I am childless, and the heir of my house is Eliezer of Damascus?"』

 

다 좋은데, 자식 문제 어떻게 할건데요...?!?!

이런 현실의 문제가 안 풀리고 있으니, 자식문제가 안 풀리는데 큰 민족은 무슨?!?!

나는 너의 방패, 나는 너의 상급....

Attitude가 안 좋아진 아브라함...

 

자식이 없는 자는 충실한 종에게 상속을 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너무 오래 응답이 없으니, 차선책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다. 

 

(창 15: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 15:3) 『And Abram said, "Since Thou hast given no offspring to me, one born in my house is my heir."』

 

이러한 의심의 태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시 약속을 재확인 시켜주신다.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4) 『Then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This man will not be your heir; but one who shall come forth from your own body, he shall be your heir."』

 

여러분들이 붙잡으려 하고 있는
그 차선책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잠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잠 13:12) 『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But desire fulfilled is a tree of life.』

 

마음 한 구석에 남몰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그 문제. 

하루 종일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바닥만 보던 아브라함.

이렇게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보여주며 다시 위로하시는 하나님.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And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Now look toward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 if you are able to count them." And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descendants be."』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놀라운 내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의심이 사라지고, 의심의 부하들(좌절감, 열등감, 두려움)이 모두 떠나가버릴 수 있습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Then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reckon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의로 여겨주시겠다!"

좋은 믿음이라고 선포해주신 하나님. 

투정거리던 믿음이었음에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며, 믿음을 세워주셨는데,

하나님이 다 하셨지만, 

그래도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그 정도 믿음이면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 

 

아직 연약한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면 다시 이 믿음의 경주에 세워주실 하나님. 

 

3. 이스마엘 : 자포자기한 상태

믿음의 가정에서 많은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분란 속에서 우리는 많이 성숙해집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전체가 축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인간적인 편법으로 나은 아들 이스마엘에 대해서...타협하고 싶어졌다.

이스마엘에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믿음이 영적동면 상태(체념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또 오셨습니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Now when Abram was ninety-nine years old,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him, "I am God Almighty; Walk before Me, and be blameless.』

 

말씀이 나를 깨울 때,

내 안에 있는 모든 예배와 소망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 영적인 잠을 자고 있던 분이 계신다면,

그 잠자고 있던 믿음이 깨어나길 소망합니다.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 17:5) 『"No longer shall your name be called Abram, But your name shall be Abraham; For I will make you the father of a multitude of nations.

 

이미 주신 말씀에 대한 성령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바꾸어주는 순간은 그의 운명이 바뀌는 타이밍입니다. 

 

근데 왜 25년이 지나서야 이름을 바꾸어주신 걸까요?

아브라함의 이름 속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사명을 깨달을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은 인생이 아니라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세계화 라는 말이 없던 시대입니다.

전부 다 자기민족만 중요하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한 가문, 한 민족의 수준이 아니라,
온 열방의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한비전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하나님.

 

CES 를 처음 준비할 때, 우리 교회용으로만 기획했었지만,

지금 인도네시아 일본 몽골 등 ... 다양한 언어로 제작되고 성경을 전할 수 있는 교재로 잘 활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창 12:7-8)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7-8) 『[7] And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this land." So he built an altar there to the LORD who had appeared to him.
[8] Then he proceeded from there 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pitched his tent, with Bethel on the west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장막 : 일터입니다.

제단 : 예배의 터입니다. 

 

장막은 수없이 바뀔 수 있지만,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제단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첫번째 예배의 샘플이 바로 여기입니다.

좋은 영적인 습관을 어린 나이 때부터 길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배의 불이 식으면 의심의 파도에 휩쓸립니다. 

 

아브라함이 쌓았던 예배의 제단.

우리가 예배의 제단 앞에 나아왔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면서 영적인 근육이 생겨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소망의 중간 싸인이라도 좀 보여주세요...!

 

뭐라도 좀 있으면 제가 좀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답답한 우리의 마음...

구름기둥, 물기둥을 보고 홍해가 갈라진 것을 본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  계속 지속 가능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예배 중에 오는 그분의 임재만이,

눈에 어떤 싸인이 안 보여도, 

 

가장 확실한 싸인은 바로 "말씀" 입니다. 

 

믿음이 완전히 성숙해지니깐, 시간을 찍어주시는 하나님

(창 17: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1) 『"But My covenant I will establish with Isaac, whom Sarah will bear to you at this season next year."』

 

기적은 "말씀하신대로" 일어납니다. 

(창 21:1-2)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 21:1-2) 『[1] Then the LORD took note of Sarah as He had said, and the LORD did for Sarah as He had promised.
[2] So Sarah conceived and bore a son to Abraham in his old age, at the appointed time of which God had spoken to him.』
300x250
728x90

매주 예배를 드리며 들은 메세지들을 정리해보며 올려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누구에게든,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든 힘이 되고 소망이 되고 위로가 되고
충고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허접하지만, 조금씩 정리하고 쉐어해보려고 합니다.
 
 

본문

(요 7:1-24) 『[1] 그 후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서만 다니시고 유대 지방에는 다니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2]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와지자
[3]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 그래서 형님이 하시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4]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숨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왕 이런 일을 하실 바에는 형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십시오.'
[5]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의 친형제인 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6]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너희 때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7]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어도 나는 미워한다. 이것은 내가 세상의 일이 악하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8] 너희는 어서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거라. 나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지금 올라가지는 않겠다.'
[9]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계속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
[10] 동생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후에 예수님도 올라가셨으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가셨다.
[11] 명절이 되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찾아다녔다.
[12] 그리고 군중들 가운데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어떤 사람은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야, 그는 백성을 속이고 있어.' 하였다.
[13]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예수님에 대해서 터놓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14] 명절 기간이 거의 절반쯤 지났을 때 예수님은 성전으로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15] 그러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하고 말하며 신기하게 여겼다.
[16]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면 내 교훈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내가 마음대로 말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18]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지만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너희는 한사람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이 말에 군중들이 `당신은 귀신이 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한단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안식일에 한 가지 기적을 행했다고 너희는 모두 놀라고 있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다는 이유로 (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너희 옛 조상들에게서 시작된 것이지만) 너희는 안식일에도 할례를 베풀고 있다.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안식일에도 사람이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이 아픈 사람을 완전하게 고쳐 주었다고 너희가 내게 화를 내느냐?
[24]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

 

메세지

예수님이 올라가지 않으신 이유
 
[2] 마침 유대인들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와지자
 
초막절, 추수감사절의 성격도 있었고, 수장절이라고도 불리웠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던 시기였다.
 
초막절의 3가지 의식
1.멀쩡한 다 집을 버리고 광야에 초막을 지어놓고 거기서 일주일 체험하기
-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보냈던 시간들을 경험
 
2.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서 성전에 가져가는 것
- 풍성한 생명수를 주실 하나님
 
3. 여인의 뜰에 횃불을 밝히는 것
그래서 예수님도 물과 불을 소재로 메세지를 전하신다.
때와 절기에 맞는 준비를 하고 계셨던 예수님
 

[3]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 그래서 형님이 하시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4]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사람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숨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왕 이런 일을 하실 바에는 형님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십시오.'

 
형(예수)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던 동생들...
오병이어 사건 등으로 이제 뭔가 진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형때문에 덕좀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도?
 
나 좀 큰 인물 되서...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서... 세상이 좀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하나님도 전하고 하나님을 알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동생들의 간청...
 

[4] ... show Yourself to the world.

 
당신을 세상에 나타내주십시오.
왜 이토록 나타내길 원할까???
 

[5]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의 친형제인 그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조급하기 때문에...
요청하는 동생들...
 

[6]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너희 때는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다.
[7]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어도 나는 미워한다. 이것은 내가 세상의 일이 악하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들 뭐 때문에 바쁘니...?!?!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니....!?!?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없다.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예수님. 세상의 일을 악하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8] 너희는 어서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거라. 나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지금 올라가지는 않겠다.'
[9]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계속 갈릴리에 머물러 계셨다.
[10] 동생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후에 예수님도 올라가셨으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가셨다.

 
예수님의 모순된 말과 행동...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 했는데,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었고,
이번에 또한 때까 이르지 않았다 해놓고 몰래 올라가셨다. 
 

(요 17:1)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이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요 17:1) 『These things Jesus spoke; and lifting up His eyes to heaven, He said, "Father, the hour has come; glorify Thy Son, that the Son may glorify Thee,』

 
예수님의 때는 언제인가...?!?!
십자가를 지는 것.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그분의 때인 것이다.
 
3년반의 공생애...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미션을 다 해내셨다.
우리가 얘기하는 때는 물리적인 때, 크로노스의 시간이지만,
하나님의 때는 카이로스의 시간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타이밍, 예수님의 타이밍.
 
윤회와 같은 시간이 아니라,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이 있는 ... 종말론적 시간관
십자가에 달러 죽으셨는데, 다 이루셨다? 
 
크리스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막연한 시간이 아니라, 소명과 사명을 이루어나가야 할 시간인 것이고,
그 시간에 우리의 미션을 완수해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부르심(Calling)에 응해야 할 시간, 타이밍도 있는 것이다.
 
몰래 올라가신 예수님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 관심이 없으셨다.
잠잠히 단 몇 사람이라도 은밀하게 조용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교회들이 있다.
 


[11] 명절이 되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찾아다녔다.
[12] 그리고 군중들 가운데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어떤 사람은 `그는 좋은 사람이다.'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야, 그는 백성을 속이고 있어.' 하였다.

[14] 명절 기간이 거의 절반쯤 지났을 때 예수님은 성전으로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15] 그러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하고 말하며 신기하게 여겼다.
[16]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배우지도 아니하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르칠 수 있느냐?!?!
랍비의 문하생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배울 수 없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랍비 가라사대..." 했었는데,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제대로 랍비에게 배운적이 없는데 왜 저 사람은 가르치고 있는가? 토라를 제대로 배운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성전에 나타나서 저렇게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지....?!?!
 
목사 안수도 안받은 사람이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 기분이 안좋을 수 있는데...
이 때는 더 했다.
 
예수님은 내 교훈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 이라고 표현... 직통 계시...!!! 
=> 이것이 큰 갈등을 불러오는 원인이었다.
 
자격도 정규과정도 아닌 예수님이 저렇게 가르치려고 하니, 
자기가 율법이고, 판단의 기준이고, 성경이 중심에 있지 않은 사람들... 예수님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면 내 교훈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내가 마음대로 말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은 우리가 살아낸 만큼의 분량이...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묵상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믿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낸 만큼이 우리의 믿음이다.
 
아는 대로 살게 되는 것.
믿는 대로 살게 되는 것.
그 삶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되는 것.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이 입으로 계속 얘기하는 나 같은 사람들...
계명을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 위선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못박히더라도,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진정한 의를 추구하는 의로운 사람이다.
기준이 자기자신도, 사람들도 아닌,
하나님, 절대자의 올바른 기준이 자신의 기준이 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랑과 존중, 용서, 희생을 실현하게 되고 그것을 가치있게 여기게 된다.
자신이 하나님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다른 사람을 배제하거나 쳐내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너희는 한사람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성경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
야훼라는 말에 목욕을 다시했고, 붓을 꺾고 다시 적었다 할만큼...
그런 사람들한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구나... 하니, 
 
예수님은 살인의 충동, 살의를 알고 있었다.
살의를 갖는 것만으로도 죽인 것과 다름없다 라는 기준을 갖고 계신 예수님.
 
한편으로는 예수님은 오래 사셨다는 생각도 들수 있다. 죽어도 벌써 죽을 수 있을만큼 위기가 많았다.

 

[23]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안식일에도 사람이 할례를 받는데 내가 안식일이 아픈 사람을 완전하게 고쳐 주었다고 너희가 내게 화를 내느냐?

 
38년된 병자를 고쳤을 때부터,
할례 받는 것은 아브라함의 율법이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켜야 하는데,
아기의 할례는 하지 않느냐?!?! 안식일 규정을 어겨서라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이 이 생명을 지켜달라고, 구하지 않느냐...?!?!
과연 무엇이 먼저이냐...?!?!
너희가 그렇게 목숨거는 율법의 핵심과 본질이 대체 무엇이냐...?!?!
 
그렇다면, 38년된 병자가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안식일에 해야 할 더욱 합당한 일이 대체 무엇이 있느냐...!?!?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본질" 인 것이다.
"외모"가 아닌 것이다. 
 

[24] 겉모양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올바른 표준으로 판단하라.'』
[24] "Do not judge according to appearance, but judge with righteous judgment."』

판단하다 = 선택하다. 결정하다. 잘라내다. 
분리를 경험하게 되는 일 =>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능
쉽게 자의적으로 판단해버리는 것.
그저 내 잣대를 가지고 판단해버리는 것... 
말씀을 소유하기만 하고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이것을 활용해서 분절시키는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가장 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에 합당하게 사는 것...!!!
내 때를 주장하면서 생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것 =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남을 쉽게 비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때와 나의 때가 일치한다는 것...
예수님은 세상의 때와 야합하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맞춰...자신이 희생하는삶을 살아내셨다...!
 
 
 
 
 
 
 
 
 
 
 

300x25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