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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찰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영적으로도 새롭게 결심을 하여 영적인 재건를 추진하고 있었다.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자손을 영접치 아니하였고,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다고 한다.

백성들은 이 율법을 듣고 이 섞인 무리들을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다. (도비야를 성전에서 쫓아낸 것도 같은 방향성이다.)

암몬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대대손손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을 하나님의 총회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 묵상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신걸까?

지금 시대의 나에게 암몬 사람같은 사람들과 관계를 다 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투에 대해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왜 그들의 영향력을 끊어야 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선지자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암몬의 왕 발락

이 배경 이야기를 보다 보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서 돈으로 선지자도 사들여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발락왕.
욕망 속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던 발람.
나귀를 통해서 축복하는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달리 그저 자신의 기준과 욕심대로 저주하려 했던 발락.

결국 인생의 중심과 주인이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사람들. 이 영향력에서 끊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 적용

나는 어떠한가?

바쁘고 치열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주님이 동기가 되어, 주께하듯 하려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이들 가운데, 예수님의 마음이 전달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면,
끊임없이 나의 업무 태도와 액션들을 피드백 해보아야 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회복하는 시간 가운데, 아내와 함께 무엇이든 하며 공유하는 시간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지만
그 마음 속 깊이에는
주님께 기도하며,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시간들을
조금씩 계속해서 갖어가야 한다.

산책하고 그럴 때 shorts를 보고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려 하는 태도들이 있다.

* 기도와 실천

내 안에서 발락의 마음, 발람의 마음
인생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잠 3:5-6 말씀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잠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범사에 그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너를 인도하시리라.

지쳤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쇼츠를 보려는 태도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려고 하는 것을 끊자.
하루 10분으로 제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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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8) 『O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How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

직접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피상적으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면,

인간의 쓴맛을 보게 되더라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Q. 다윗이 맛본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엇이었을까?

 

1. 내가 부르짖으실 때, 들으시는 하나님. 경청하시는 하나님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였다.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고, 블레셋까지 쫓겨갔던 것이다.

 

아비멜렉 : 블레셋의 왕조, 가드왕 아기스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시 34:2-4)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 34:2-4) 『[2] My soul shall make its boast in the LORD; The humble shall hear it and rejoice.
[3] O magnify the LORD with me, And let us exalt His name together.
[4] I sought the LORD, and He answered me, And delivered me from all my fears.』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들으신다.

 

사람은 남의 이야기 잘 안듣습니다.

듣는 것 같지만, 경청하지 않습니다. 

 

위장적, 선택적 경청, ...

아얘 듣지 않는 경우, ...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2. 넉넉한 공급을 해주시는 하나님

(시 34:9-10)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9-10) 『[9] O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o those who fear Him, there is no want.
[10] The young lions do lack and suffer hunger; But they who seek the LORD shall not be in want of any good thing.』

 

 

3. 정의의 하나님, 의인을 살리시고 악인을 끊으신다.

(시 34:11-16) 『[11]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시 34:11-16) 『[11] Come, you children, listen to me; I will teach you the fear of the LORD.
[12] Who is the man who desires life, And loves [length of] days that he may see good?
[13] Keep your tongue from evil, And your lips from speaking deceit.
[14] Depart from evil, and do good; Seek peace, and pursue it.
[15] The eyes of the LORD are toward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cry.
[16]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evildoers, To cut off the memory of them from the earth.』

 

하나님은 바른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시고,

악한 길을 갈 때 그 길을 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이 악한 길을 가면 반드시 고난을 겪게 됩니다. 

 

Q. 악한 짓을 하는데 계속 잘되는 저들을 계속 가만둡니까? 

 

어거스틴  
"그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그렇게 결국 죽는 것이 가장 큰 형벌입니다.
그것에 고난을 주시고 멈추게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8) 『The LORD is near to the brokenhearted, And saves those who are crushed in spirit.』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귀찮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통회하고 후회하고 뉘우치는 사람... 

이미 결과가 안좋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엎질러진 물이지만,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붙드십니다. 

 

빈 들판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떠나가는 것 같아도,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될 때입니다. 

 

 

4.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형벌을 받지 않으리라.

죄인인 것은 Fact이지만,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 34:21-22)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시 34:21-22) 『[21] Evil shall slay the wicked; And those who hate the righteous will be condemned.
[22] The LORD redeems the soul of His servants; And none of those who take refuge in Him will be condemned.』

 

악이 악을 죽일 것이다.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사람 다윗... 참 부러웠습니다.

참 많이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구나 ! 

 

돈 많은 사람들 가끔 부럽습니다. 

근육질의 건강한 사람들 가끔 부럽습니다.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한 사람들 쪼끔 부럽습니다.

하나님의 이 선하심을 많이 맛본 사람, 가장 많이 부럽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만큼 인생이 더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참 독하고, 가까이 가기 힘들고, 부딪치고 싸우고, 개폼잡고, 부서지고 깨어지고... 

이상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꼰대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

여기서부터 인생이 시작됩니다. 

 

예배 가운데 인생이 바뀌고, 낙심이 사라지고, 새로운 비전이 보인 경험들이 있습니다.

 

좋데~    vs.    좋아!
누군가의 간증이 아니라 내 고백, 나의 선언이 되길 바랍니다. 
순종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깊이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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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24: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24: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24: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24: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24:6) 내가 너희의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바다에 이르게 한즉 애굽 사람들이 병거와 마병을 거느리고 너희의 조상들을 홍해까지 쫓아오므로
(24:7) 너희의 조상들이 나 여호와께 부르짖기로 내가 너희와 애굽 사람들 사이에 흑암을 두고 바다를 이끌어 그들을 덮었나니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을 너희의 눈이 보았으며 또 너희가 많은 날을 광야에서 거주하였느니라
(24:8) 내가 또 너희를 인도하여 요단 저쪽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매 그들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매 너희가 그 땅을 점령하였고 나는 그들을 너희 앞에서 멸절시켰으며
(24:9) 또한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더니 사람을 보내어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다가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24:10) 내가 발람을 위해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오히려 너희를 축복하였고 나는 너희를 그의 손에서 건져내었으며
(24:11) 너희가 요단을 건너 여리고에 이른즉 여리고 주민들 곧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너희와 싸우기로 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24:12)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
(24:13) 내가 또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는 또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24: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24: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24: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여호수아는 죽을 때가 되어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들어온 가나안 땅에 있는 많은 우상들과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누구를 섬길지 요청한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의 실패는 유대인들의 실패로 치부하여, 유대인들을 멸시하고, 우리는 잘 하고 있다.

개신교 입장에서는 구교를 비판하는 우리는 잘 하고 있다.

우리가 잘 해야 하는 것을 남이 못하는 것을 설명하며 자기를 입증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롬 1:18-20)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18-20) 『[18] 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suppress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19] because that which is known about God is evident within them; for God made it evident to them.
[20] 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His invisible attributes, 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 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through what has been made,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이스라엘이 아닌 인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진리와 생명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인데, 몰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몰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정죄이고 저주인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윤리, 도덕의 잣대를 성경의 기준으로 바꾸지 않으면 어려운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 착하게 살았는데 왜 보상이 없지요?

뛰엄뛰엄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이게 세상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50년간 목회를 하며,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진수를 모르고 겉을 핥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나도 너희를 버린다가 아니라, 우리를 버리지 않으셔다.

예수로 인하여 우리를 다시 회복시킬 계획과 목적을 갖고 계신 것이다. 

 

구원이란? 용서받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원래 죄를 범치 않았으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야 하는데,

구원은 지옥가지 않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영광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를 안 짓는 정도가 아니라 의와 진리와 생명과 영광의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엡 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지면 죽으니깐, 상대를 죽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영광을 위하여 부름을 입었습니다.

 

다른 종족이 되었습니다.

 

"화를 내면, 폭력을 쓰면 손해다"

세상은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폭력과 화를 같이 싸워 대응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의리" 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겠다는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80즘 되서 보면,
우리가 한 수고보다 하나님의 하심이 크다는 것을 진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너그러워 집니다.

 

우리한테 지속적으로 전달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메세지,

 

너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놓을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왜 이 모양이냐? 라는 우리의 생각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선악과는 주셔서 이렇게 범죄하게 하느냐?"

"왜 믿으면 바로 영광에 이르게 하지 이렇게 수없이 넘어질 시험을 허락하시느냐?"

"겸손은 자기가 남보다 못난 상황이 되어야 배우게 됩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과정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절대 끊어지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이시다.

그래서 그 과정의 고난은 견딜만한 것이고 이 후에 있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태어나고 끝이 아니다.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핵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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