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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새벽출정호의 항해> 에서 어떤 섬에 이르렀을 때, 경고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이 섬에 이르면 모든 꿈이 이루어집니다. 도망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곳? 여기가 좋은 곳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꾸게 되는 악몽까지, 가장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2가지로 바라보게 된다.

 

두려움 : 미래에 있을지 모를 상처에 대해서 걱정.

성경에 366번이나 나온 "두려워 말라" 라는 말씀.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의 대상만 바뀌어 왔을 뿐이다.

크고 작은 두려움에 눌려있습니다.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두려움에 예외는 없다.

남의 두려움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의 증상들이 있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상태가 됩니다.

(이기적인 사람을 봤을 때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두려움들에 휩쌓여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겠습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깁니다.

가진 것이 많아질 수록 두려움도 커집니다.

잃을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이 커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현상유지를 추구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둬두는 정신적인 감옥이 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기에 기회를 계속 놓치게 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뭔지 모르던 시절,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을 때,

손에 장갑을 끼고 컴퓨터앞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보스 포럼에서 티머시 스나이더

한국은 달라진 위상에 비해 그에 걸맞지 않은 약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나라가 미국과 한국입니다.

 

 

성도들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이유? 

BC 2500년경

세계 최강대국이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을 당한 상황

70년 포로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인들은 모두 해방이 되었다. 

 

두려움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초토화된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뭐하나.

 

시리아 난민들은 이제 돌아갈 기회가 생겼는데도, 가봐야 소용없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미 수백년 전에 예언을 주셨다. 

 

거절 당한다는 것.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난민이 되면, 거절감이 국가적으로 있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라 하셨다.

내가 너를 아브라함으로 보겠다.

(사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 41:8) 『"But you, Israel, My servant, Jacob whom I have chosen, Descendant of Abraham My friend,』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문제가 사라지거나 상황이 좋아지거나 하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달라졌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Do not anxiously look about you,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surely I will help you, Surely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미래를 너무 예측하려고 할 필요없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인생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하루하루 버틸 수 있는 신비한 힘이 하늘로부터 옵니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실제적으로, practical 한 도움을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늘의 특수부대, 천사들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대충 붙드는 것이 아니라 전력투구해서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Surely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이 손에 붙들리려면, 

약한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 거룩하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시간과 유튜브나 TV를 보는 시간보다 적다면, 두려움의 영향력은 더욱 더 커질 것입니다. 

 

26년으로 무속인으로 살다가 회심하여 집사님이 되신 분
"나를 찾아오셨던 40%가 크리스챤들이었다."
"당신들은 왜 하나님 믿으면서 점을 보러 오십니까?" 했었다. 
크리스챤이 되었으면 팔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팔자에 구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더 많이 듣기를 바랍니다.

 

(사 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사 51: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A people in whose heart is My law;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an, Neither be dismayed at their revilings.』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으면, 분별력을 줍니다. 

 

뛰어난 바다의 선장은 먹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보면 이것이 피해야 할 태풍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용기와 무모함은 다릅니다.

 

크리스챤이 공부 안하면서, 시장 조사 안하면서,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입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응답조건은,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7] "The afflicted and needy are seeking water, but there is none, And their tongue is parched with thirst; I, the LORD, will answer them Myself, [As] the God of Israel I will not forsake them.

 

불쌍한 사람 모두가 구원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상하지만, 간절한 사람이 구원을 경험합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이게 아니라
오늘 주시는 그 은혜가 없으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부르짖는 불쌍한 사람을 돕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힘든 길일 줄 알았다면 오지 못했을 것이다. 

믿음의 여정은 늘 위험이 

 

싱글 때보다 결혼할 때,

자식을 나을 때,

상처받을 일도 많고 두려움도 많습니다.

힘들 것이고 실패하기도 할 것이지만, 용기있는 사람이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선택의 순간이 두려웠습니다.

두려웠다고 해서 타석에 안나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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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living God,

그분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지금 이 순간도 분명히 계신다.

 

Spirit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

 

in spirit 영적으로,

in truth 진리 안에서, 

 

육체적인 접근 방식이 아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그분을 찾고 만나야 그분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living spirit ...

 

2. 창 1:27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6]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sky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s on the earth."
[27]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그렇게 만드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에게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7) 『And he answered and said,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AND WITH ALL YOUR MIND;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사랑을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heart), 목숨(soul), 힘(strength), 뜻(mind).

 

  • 마음(καρδία, kardia) → 우리의 감정과 내면 깊은 중심
  • 목숨(ψυχή, psychē) → 우리의 존재 자체와 생명
  • 힘(ἰσχύς, ischys) → 우리의 물리적 힘, 능력, 재능
  • 뜻(διάνοια, dianoia) → 우리의 사고방식, 지적 헌신

 

우리의 모든 것(시간, 노력, 생각, 행동)으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웃도 이렇게 사랑하라고 한다.

 

왜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가운데, 우리는 이러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걸까?

 

인간이 만들고 있는 "휴머노이드"에 어떠한 기능을 주려고 하는가? 

 

뛰어난 힘, 지적 능력을 갖춘 robot을 원한다. 

더 뛰어난 힘과 지식을 갖출수록 비싸진다. 인간을 위해서 더 쓸모 있고 가치가 있어진다. 

그러나 그가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다. 

ChatGPT에게 쌍욕을 해보았다. 그는 1도 타격받지 않고, 나를 위로하며 다른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감정이 없다. 인간은 그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습된 메커니즘에 의한 응답이 있을 뿐이다. 

감정은 사람만의 전유물이다. 

 

robot에게 스스로의 의지가 있을까? 

최초에 설계한 대로만 컨트롤된다. 정해진 input에 의해서 output이 나올 뿐이다. 

의지를 주지 않는 이유는?  

의지란 그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 가는 능력이다.

선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의지라는 능력을 주었을 때,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생애를 선택해서 

나를 떠나갈 수도 있다.

 

인간은 도저히 로봇에게 주고 싶지 않은 그러한 능력을,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주셨을까?!?!?

이것이 곧 신, 하나님의 형상인데, 왜 당신을 그대로 본떠서 이렇게 만드신 것일까?

 

 

3.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9)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9] God is faithful, through whom you were called into fellowship with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우리를 자기 형상 대로 창조하신 목적?

교제하시기 위해서

자기 형상이 아니라면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지식, 감정, 의지는 신의 형상이기에 주어진 능력인 것이다. 

 

달곰이 가 생각났다.

나를 늘 반겨주는 달곰이. 

나를 싫어하지 않고 늘 함께 있고 싶어 한다. 

그가 느끼는, 소통하는 방식이 있다. 

 

지식을 습득한다. 살아가기 위한 지식, 먹기 위한 지식, 살아남기 위한 지식...

감정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다.

의지를 들여 주인을 살리려 하기도 하고, 도망을 치기도 하며, 주인을 찾아오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다.

 

지식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판단할 수 있다.

감정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아픔, 설움, 기쁨, 즐거움뿐 아니라 다른 이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에서,

"저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 같아" 한다면, 그 사람과는 당연히 교제가 안된다.

"저 사람은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원하질 않아" 한다면 그 사람과는 당연히 교제가 안된다.

"저 사람은 지식의 관심사 자체가 달라" 한다면 그 사람과는 당연히 교제가 안된다. 

 

※.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 누시기 위하여 자기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시고 부르셨습니다.

 

4.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The thief comes only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I came that they might have life, and might have [it] abundantly.』

 

교제를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교제를 회복시키시고 싶은 이유?)

우리에게 생명과 풍성함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교제의 깊은 Connection이 맺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때 안 좋은 영향도 깊이 있게 들어올 수 있다.

 

10절에 나온 도둑들도 "깊은 교제의 과제(Connection)"을 이용한다.

지식적, 감정적, 의지적으로 깊게 연결된 관계성 속에서,

예수님이 아닌 악한 사람들은 그 깊은 관계성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탈취해 가곤 한다.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내 감정과의 연결, 내 의지에 대한 컨트롤, 내 지식에 대한 잠식 등을 이용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한다. 

이러한 예수님의 풍성함을 받기 위해서는 "connection"이 이루어져야 들어올 수 있다.

 

풍성함이란? 

꽉 채워져서 넘치는 상태,

부족함이 없는 상태보다 더 나아간 상태이다.

 

가끔 우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아아! 이제 여한이 없다!",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이런 말을 쓴다.

순간적으로 꽉 찬 만족을 느끼는 타이밍이 있을 수 있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된다던가,

아주 어려웠던 과제를 해결해 냈다거나,

아주 고생스러운 프로젝트가 끝났다거나,

 

그러나 항상 아주 잠시일 뿐이다.

우리는 또 무엇인가 바라고 구하고 배고프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지 뭐...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이라는 분은 어떻게 "풍성함"이라는 표현을 쓰셨을까."

"이것은 이제 더 바랄 게 없다!" 이 수준을 넘어서서 "생수의 강의 흘러나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35) 『Jesus said to them, "I am the bread of life; he who comes to Me shall not hunger, and he who believes in Me shall never thirst.』

(요 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7-38) 『[37] Now on the last day, the great [day] of the feast, Jesus stood and cried out, saying, "If any man is thirsty,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38] "He who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said, 'From his innermost being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39] But this He spoke of the Spirit, whom those who believed in Him were to receive; for the Spirit was not yet [given,] because Jesus was not yet glorified.』

 

5. 하나님의 목적하신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할까? 

사람들의 지식, 감정, 의지는 무엇에 connect 되어 있을까?

유튜브에 connect 되어 있을 때, 우리에게는 무엇이 흘러들어올까?

직장에서 connect 된 환경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흡수하고 있을까?

무엇에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많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connect 되고자 하는 것들? 

3G

Gold, Glory, Girl, Game....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게임을 할 때,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만, 진심으로 그 음악을 듣고 감동해 주는 사람들의 박수가 없다면, 혼자서만 행복할 수 있을까?)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냈을 때, 

 

우리의 지식, 감정, 의지가 거기에 얼마나 깊은 감동과 반응을 하게 될까?!?!

 

그러나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끼게 되는 타이밍은 언제인가? 

크리스마스나, 연말, 생일에 축하받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그때가 행복한 때이다. 

 

하지만, 내 곁에 이런 깊은 교제의 관계성이 아무도 없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창세기 1장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2] And the earth brought forth vegetation, plants yielding seed after their kind, and trees bearing fruit, with seed in them, after their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든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0] Then God said, "Let the waters teem with swarms of living creatures, and let birds fly above the earth in the open expanse of the heavens."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4] Then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living creatures after their kind: cattle and creeping things and beasts of the earth after their kind"; and it was so.

 

땅 위에 우뚝 선 나무만 보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자연의 이치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그곳에 뿌리박고 있는 것.

골로새서 2장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삶은 어느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땅에서 뽑힌 나무들은 어느새 시들고 말라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과 닮은 영혼으로 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것이기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과 붙어있지 안다면

땅에서 벗어난 나무와 같이 어느새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7) 『Then the LORD God formed man of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being.』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들에 이를 수 있다.

 

1. 하나님은 혼자가 아닌 함께함(교제)를 원하시는 분이다.

2.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하고 싶어서 인간에게 자기와 같은 수준의 지식과 감정, 의지를 부여하셨다.

3. 하나님은 함께함(교제)를 통해서 인간에게 풍성함을 부어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 스스로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풍성함을 나누어 주시고 싶어서 창조하신 것이다)

 

4. 인간도 하나님을 닮아서 함께함(교제)를 원한다.

5. 인격적인 교제를 경험할수록 하나님이 없이도 건강한 자아와 존재로 살아간다.

6. 그러나 하나님 외의 다른 자극과 교제로는 "풍성함"까지 이르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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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말씀을 주신 때와,

그것이 성취되는 때 사이에는 "오랜 시간"의 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관심이 있으시긴 할까?

 

믿음이 없던 것이 아닌데,

믿음이 바이러스에 걸린 상태.

 

믿음의 반대가 불신이라면,

의심은 불신으로 가는 단계인 것이다.

 

믿음은 소망으로,

불신은 두려움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의심이란 소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단계이다.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For through the grace given to me I say to every man among you not to think more highly of himself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 as to have sound judgment, as God has allotted to each a measure of faith.』

 

말씀의 씨앗이 우리 마음에 잉태되기까지,

마귀는 이것을 계속해서 방해합니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은 영적인 영웅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 입니다.

 

(롬 4:18-19)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18-19)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기도응답을 받기까지 25년의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차선책이 큰 유혹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 때마다 영적인 Lesson을 가르쳐주셨고, 믿음은 더욱 성장해갔다.

믿음을 더욱 더 업그레이드 시켜서
이 약속을 받을만한 그릇으로 성장시켜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3가지 차선책이 온전한 믿음을 방해함.

 

1. 조카 롯 : 세상적 영악함에 의지함

부유한 나라 애굽에 다녀오더니, 자기 사람, 자기 재산을 만들기 시작했고,

서로 간에 싸움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양보하고 롯이 자기의 길을 가도록 함.

혹시 롯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닐까? 했는데, 그 롯이 떠나가버렸습니다.

롯이 떠나고 나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

(창 13:14-16)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 13:14-16) 『[14] And the LORD said to Abram, after Lot had separated from him, " Now lift up your eyes and look from the place where you are, northward and southward and eastward and westward;
[15] for all the land which you see, I will give it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forever.
[16] "And I will make your descendants as the dust of the earth; so that if anyone can number the dust of the earth, then your descendants can also be numbered.』

 

롯 같은 존재에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보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오는 축복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롯을 의지했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적 영악함, 물질 만능주의의 영향을 롯이 보여주고 있다. 

롯이 떠나간 빈 자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욱 강력히 임했다. 

 

 

2. 엘리에셀 : 마음에도 없는 옵션에 안주하려 함.

4개국 연합국의 공격 속에 위기에 처한 롯

롯을 구하기 위해서 급습한 아브라함.

고대 중동에서 전설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된 아브라함

연합국들의 공격 속에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은 계속 염려와 의심이 들었다. 

내 힘으로 살 수 있을 때는 하나님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After these thing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saying, "Do not fear, Abram, I am a shield to you; Your reward shall be very great."』

 

이런 위대한 약속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썰렁한 반응.

 

(창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창 15:2) 『And Abram said, "O Lord GOD, what wilt Thou give me, since I am childless, and the heir of my house is Eliezer of Damascus?"』

 

다 좋은데, 자식 문제 어떻게 할건데요...?!?!

이런 현실의 문제가 안 풀리고 있으니, 자식문제가 안 풀리는데 큰 민족은 무슨?!?!

나는 너의 방패, 나는 너의 상급....

Attitude가 안 좋아진 아브라함...

 

자식이 없는 자는 충실한 종에게 상속을 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너무 오래 응답이 없으니, 차선책에 안주하려 했던 것이다. 

 

(창 15: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 15:3) 『And Abram said, "Since Thou hast given no offspring to me, one born in my house is my heir."』

 

이러한 의심의 태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다시 약속을 재확인 시켜주신다.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 15:4) 『Then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This man will not be your heir; but one who shall come forth from your own body, he shall be your heir."』

 

여러분들이 붙잡으려 하고 있는
그 차선책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도 알고,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잠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잠 13:12) 『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But desire fulfilled is a tree of life.』

 

마음 한 구석에 남몰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그 문제. 

하루 종일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바닥만 보던 아브라함.

이렇게 믿음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보여주며 다시 위로하시는 하나님.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And He took him outside and said, "Now look toward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 if you are able to count them." And He said to him, "So shall your descendants be."』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놀라운 내면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의심이 사라지고, 의심의 부하들(좌절감, 열등감, 두려움)이 모두 떠나가버릴 수 있습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Then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reckon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의로 여겨주시겠다!"

좋은 믿음이라고 선포해주신 하나님. 

투정거리던 믿음이었음에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며, 믿음을 세워주셨는데,

하나님이 다 하셨지만, 

그래도 말씀을 붙잡고 일어서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그 정도 믿음이면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 

 

아직 연약한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면 다시 이 믿음의 경주에 세워주실 하나님. 

 

3. 이스마엘 : 자포자기한 상태

믿음의 가정에서 많은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분란 속에서 우리는 많이 성숙해집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전체가 축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인간적인 편법으로 나은 아들 이스마엘에 대해서...타협하고 싶어졌다.

이스마엘에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믿음이 영적동면 상태(체념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또 오셨습니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Now when Abram was ninety-nine years old,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him, "I am God Almighty; Walk before Me, and be blameless.』

 

말씀이 나를 깨울 때,

내 안에 있는 모든 예배와 소망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 영적인 잠을 자고 있던 분이 계신다면,

그 잠자고 있던 믿음이 깨어나길 소망합니다.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 17:5) 『"No longer shall your name be called Abram, But your name shall be Abraham; For I will make you the father of a multitude of nations.

 

이미 주신 말씀에 대한 성령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바꾸어주는 순간은 그의 운명이 바뀌는 타이밍입니다. 

 

근데 왜 25년이 지나서야 이름을 바꾸어주신 걸까요?

아브라함의 이름 속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사명을 깨달을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괜찮은 인생이 아니라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세계화 라는 말이 없던 시대입니다.

전부 다 자기민족만 중요하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한 가문, 한 민족의 수준이 아니라,
온 열방의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한비전을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하나님.

 

CES 를 처음 준비할 때, 우리 교회용으로만 기획했었지만,

지금 인도네시아 일본 몽골 등 ... 다양한 언어로 제작되고 성경을 전할 수 있는 교재로 잘 활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창 12:7-8)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7-8) 『[7] And the LORD appeared to Abram and said, "To your descendants I will give this land." So he built an altar there to the LORD who had appeared to him.
[8] Then he proceeded from there to the mountain on the east of Bethel, and pitched his tent, with Bethel on the west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장막 : 일터입니다.

제단 : 예배의 터입니다. 

 

장막은 수없이 바뀔 수 있지만,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제단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첫번째 예배의 샘플이 바로 여기입니다.

좋은 영적인 습관을 어린 나이 때부터 길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배의 불이 식으면 의심의 파도에 휩쓸립니다. 

 

아브라함이 쌓았던 예배의 제단.

우리가 예배의 제단 앞에 나아왔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면서 영적인 근육이 생겨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소망의 중간 싸인이라도 좀 보여주세요...!

 

뭐라도 좀 있으면 제가 좀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답답한 우리의 마음...

구름기둥, 물기둥을 보고 홍해가 갈라진 것을 본 이스라엘 민족의 믿음?  계속 지속 가능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예배 중에 오는 그분의 임재만이,

눈에 어떤 싸인이 안 보여도, 

 

가장 확실한 싸인은 바로 "말씀" 입니다. 

 

믿음이 완전히 성숙해지니깐, 시간을 찍어주시는 하나님

(창 17: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21) 『"But My covenant I will establish with Isaac, whom Sarah will bear to you at this season next year."』

 

기적은 "말씀하신대로" 일어납니다. 

(창 21:1-2)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창 21:1-2) 『[1] Then the LORD took note of Sarah as He had said, and the LORD did for Sarah as He had promised.
[2] So Sarah conceived and bore a son to Abraham in his old age, at the appointed time of which God had spoken to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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