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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회, 한홍 목사님 설교 요약입니다.

 

세대 간의 갈등.

성경은 세대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자녀들은 예언,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아비들은 꿈을 꿀 것이다.

 

사사기에서는

한 시대에 존재했던 2개의 세대를 보여줍니다.

 

(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나이 차이가 아니라,

전쟁을 경험했느냐 안했느냐로

백성을 구분했다.

 

그들은 고난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를 무너뜨린 경험들이 있었다.

밤낮없이 일하며, 강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꿈이 있던 세대였다.

 

새로운 세대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광야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 가 사사기 시작에서 나오게 됩니다.

 

기성세대 vs. 신세대

갈등이 심화되었다.

함꼐 살아야했던 사사기 초입부에는 상당한 갈등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약속의 땅에 이방민족들을 남겨두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겁니다. 영적인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두셨다는 겁니다.

 

왜 전쟁의 긴장감이 계속 되게 했을까요? 

힘들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게 해야 합니다. 

 

내가 겪은 고생 물려주지 않겠다 하면서 과잉 보호, 돈만 물려주고, 인성을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신앙생활도 "영적인 긴장감"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인 것 처럼

영적인 전쟁도 끝나있지 않습니다. 

이 전쟁을 의식하고 깨어있는 것이 영적으로 가장 건강한 때인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는 "전쟁을 각오하고 준비했을 때" 찾아옵니다.

평화! 평화!를 외칠 때는 전쟁을 막기 어렵습니다.

 

"믿음"이라는 헬라어는 흔들어서 테스트를 해본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불신적인 요소들과 끊임없이 부딪혀야 믿음이 성장합니다.

 

(3: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3:6) and they took their daughters for themselves as wives, and gave their own daughters to their sons, and served their gods.

 

전쟁을 모르는 세대의 타락.

그 책임은 그 윗세대에 있습니다.

 

정복전쟁이 끝나고 나서 삶이 안정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살만해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세대가 이루어낸 큰 업적, 산업화와 민주화!

 

산업화는 빠른 성장을 불러왔지만,

변질되어, 물질 만능주의, 승자독식, 약자 배려가 없는 시대..

 

민주화는 약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성장해왔지만,

변질되어, 모든 권위를 무너뜨립니다. 

 

자서전을 낼 때가 아니라,

참회록을 내어야 할 때 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세대를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기성세대가 이 나라를 살려왔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전 세대 : 황무지에서 집을 지어야 했던 때,

지금 세대 : 그 집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를 걱정해야 하는 때,

 

 

자녀들은 섭섭한 것만 기억하고

부모들은 미안한 것만 기억합니다.

 

세상은 갈등을 만들지만,

성령은 조화를 만들어갑니다.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3:8) Then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so that He sold them into the hands of C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and the sons of Israel served Cushan-rishathaim eight years.

 

이스라엘이 정신차리게 하기 위한 징계의 회초리 역활을 하게 된 메소보다미아.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3:9) And when the sons of Israel cried 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for the sons of Israel to deliver them,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징계가 빨리 끝나려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갈렙의 조카 옷니엘.

지난 8년간은 뭐하고 있다가 이제 일어난 것일까?

 

사사시대는 각 지파들은 자신들의 경계로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8년이 지나니, 메소보다미아는 유다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이 기도가 필요하신 이유.

소통하고 교제하고 싶어하시고,

이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3: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3:10)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him, and he judged Israel. When he went out to war, the LORD gave C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into his hand, so that he prevailed over Cushan-rishathaim.

 

자신의 나이탓하지 마시고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간구하십시오. 

 

(3: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3:11) Then the land had rest forty years. And Othniel the son of Kenaz died.

 

40년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옷니엘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망가진 나라와 교회를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할만큼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알고, 부흥을 아는 우리 부모세대가 옷니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한번 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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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John 5:24)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does not come into judgment, but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Chain Illustration

 

 

우리 인생은 Chain 처럼 연결되어 있다.

탄생으로 시작하여 사망으로 들어가며,

영원할 것만 같은 인생도 언젠가 끝을 맞이한다.

인생을 살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고, 믿으며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어려서부터 "너는 쓸모없어", "너는 나가죽어야 해" 등의 학대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인생 뭐 있냐?", "그냥 흘러가는대로 사는거지"... 허무한 이야기들을 듣거나,

듣다보면 어느새 자기의 생각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간다.

절망으로 이끌어가고,

쾌락으로 이끌어가기도 하며,

영원하지 않은 헛된 것으로 이끌어간다.

때로는 즐겁고 기쁘고 좋은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다 결국 "죽음", "끝"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간다.

 

오늘 Chain Illustration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인생에서,

예수님이라는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를 

설명해주고 있다.

 

심판 O  → 심판 X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서,

심판 받을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자에게는 정죄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을 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나 맞이하게 된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And inasmuch as it is appointed for men to die once and after this [ comes] judgment,

 

한 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든, "죽음"은 하루하루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오늘을 보내며, 나에게 주어진 생애는 다시 또 <-1일>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 날에 나는 그분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나의 인생을 회고해봤을 때,

후회없이 살았다 할 수 있을까?!?!

30대 중반이었던 시간이 얼마 전 같은데, 이제 어느새 40대를 훌쩍 넘어버렸다. 

이 시간 동안 내가 보내왔던 하루 하루... 정말 가치있게 보내고 있는 것일까? 

주님을 만났을 때, 정말 뿌듯하게 눈물 닦아 달라고 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한다.

그런데 주님을 믿지 않고 무시하며 살다가 이 심판과 평가의 시간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안타까움과 후회의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 더 절망스럽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라는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이제 내가 그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영생 X → 영생 O  

이제 나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은 추구하면 할 수록 오히려 우리에게 목마름과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2:17) And the world is passing away, and [also] its lusts; but the one who does the will of God abides forever.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던 진시황은 죽지 않기 위한 "불로초"를 찾아헤맸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 중에 "영원성"의 가치가 없다면...

그 소중한 것으로 인한 행복과 기쁨도 영원할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면 어떨까? 

가족과의 애틋함과 따뜻한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면 어떨까? 

온힘을 다해 노력하여 이루어낸 성과와 그 보람도 영원할 수 없다면 어떨까?

 

그것이 현실의 메카니즘이기에, 그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고 사는 것도 지혜로운 삶의 대처방식일 수 있겠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우리 영혼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He has made everything appropriate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ir heart, yet so that man will not find out the work which God has done from the beginning even to the end.
영원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신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흔적인 것이다. 

 

내일이면 변해버릴 다짐과 신념,

내일이면 포기하는 사랑에,

우리는 감동받지 않는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Diamond를 가장 값비싸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예수님이라는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이제 이 "영원한" 가치가 우리 안에 생기는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가장 값비싸고 소중한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사망 → 생명  

우리 인생은 생명으로 시작하여 사망으로 가고 있다.

생명으로 시작하여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을 하기도 하는데,

결국 우리 생명은 사망으로 향하여 간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영혼은 사망의 상태(벌써 심판을 받은 상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상태)였다고 표현한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내가 죽게 되었노라 하는 이런 절망적인 상태인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이다.

"독생자", 가장 소중한 자기 아들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으실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심판을 허락하셨다.

이것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서 하신 일이다.

 

예수님이라는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이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다. 

John 5:24 ...has passed out of death into life.

 

 

듣고, 믿은 그 순간,
얼마나 많은 축복이 이 순간 우리에게 임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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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디모데후서 1장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For the Spirit God gave us does not make us timid, but gives us power, love and self-discipline.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있다.

나는 요즘 두려워하는 마음에 빠져있다.
timid, fear로 해석되는데,
용기의 상실, 소심, 겁먹은 상태일 때 쓰이는 단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능력, 사랑, 절제(훈련하는 마음, 근신하는 마음)

우리는 둘 중에 한 가지 마음을 선택하게 된다.
두려움 속에 갇혀있을 때,

우리는 능력이 없어지고,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훈련해서 성장하고 극복하려는 마음은 더욱더 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 나는 딱 이런 상태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에, 악한 영들이 주입하는 생각들에 갇혀있는 것이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He has saved us and called us to a holy life—not because of anything we have done but because of his own purpose and grace. This grace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beginning of time,


내 행위가 훌륭해서 나를 불러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나를 향한 뜻이 있으신 것이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마음.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And of this gospel I was appointed a herald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예수님은 사망을 폐하셨고,
복음으로 생명과 영원 불멸한 능력을 보이셨다.

이 엄청난 복음의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바울이 세우심을 받았듯,

나를 택해주셨다고 믿으며, 제자로 살 것을 자원했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두려워하는 마음에 이렇게 갇혀있는가...

너무나 안타깝다.

디모데후서 1:13 - 14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말을 본받아 지키고
13. Hold the pattern of sound words which you have heard from me, in faith and love which is in Christ Jesus.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4. That good thing which was committed to you, guard through the Holy Spirit who dwells in us.

디모데는 바울의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본받아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내 힘만으로는 지켜내기 힘들다.

내일부터 다시 세상으로 간다.
매 순간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할지 결정할 수 있다.

1.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겠노라 하는 마음

2. 죽음마저 폐하시고 부활하시는 생명의 능력으로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 앞에서도 담대한 마음

3. 지금은 당장 부족한 사랑과 능력으로 힘겹더라도, 훈련하여 성장하겠노라 하는 근신하는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의 친구들,

다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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