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하나님은 왜 믿음으로 구원하시나요?
믿을 기회가 없는 사람들, 복음이란 것을 들어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이 부분은 기독교의 핵심 주제이다.
예수님의 시대 이후, 끊임없이 논쟁했던 이슈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에서,
Q. 믿음이란 대상이 있을텐데, 믿음의 대상이 무엇일까?
A.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하심, 그분이 나의 Savior이자 Lord되심을 믿는 것이다.
Q. 구원이란 무엇인가?
A.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 영생을 얻게 되는 것. 천국 시민이 되는 것. 하나님의 무관하던 사람이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
양처럼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서 죽게 되었는데, (사 53:6, 롬 6:23)
양같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양이 되어 주셨다.
(사 53:6) 『우리는 다 길 잃은 양처럼 제각기 잘못된 길로 갔으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롬 6:23)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제 갈 길로 가며 우리가 지은 죄의 댓가를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치루셨다.
이제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을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분이 대신 다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분이 나를 save 해주신 savior 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분을 나의 Lord 로서 내 삶의 방향의 기준으로 삼고, 주인으로 내 마음에 모셔드리는 것이다.
이것 외의 어떠한 행위나 의식도 구원을 위한 조건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크리스챤이 아니지만,
비슷한 원리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 보인다.
무엇을 믿는 것인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과 공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 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뛰고 있는 나의 심장,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손발과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눈코입, 모든 것들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다. 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으로 전달된 놀라운 생명이다. (그리고 그 부모님도 다 받은 것이고, 자신이 만들어서 주신 것은 아니다.)
태어나 자라나는 모든 과정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자식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리고 사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 내가 누리고 있는 커피 한잔의 여유 조차도 내가 돈을 지불했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해내는 모든 노력으로 다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받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내가 하지 않은 수고와 공로에 대한
은혜를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 달라도 다르다. 기품이 있고, 성숙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그는 그의 선한 믿음으로 구원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그의 믿음은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새롭게 보고 있는 크리스챤들의 믿음의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마서 2장에 나오는 것 같이 율법이 없는 그들이지만, 본능적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을 실천하면서, 부족한 것들은 안타까워 하며 돌이키며 살게 될 것이다. (CS루이스가 이야기 하는 자연법도 여기에 해당되어 보인다.)
[14] 율법 없는 이방인들이 본능적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면 그들에게 율법이 없어도 그들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15] 그들의 행동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그들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들의 양심도 이것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이 서로 고발하며 변명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그들의 마음을 고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들을 마음에 새긴체 살아가고 있다.
로마서 1장
[20]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그의 속성,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서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만물을 통해서 알게 되곤 했던 것 같다.
믿을 기회가 없는 억울한 사람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도 GPT도 성경을 근거로 상당히 일리있는 답변을 주었다.
1.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 성경은 하나님이 완전히 공의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임을 강조합니다(시편 89:14, 출애굽기 34:6-7).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 억울하게 죽은 아이는 복음을 믿을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과 마음을 온전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와 진리를 아시는 분이기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공평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2. 복음을 듣지 못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 로마서 2장 12-16절은 율법을 알지 못한 사람도 양심과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원리는 복음을 직접적으로 듣지 못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공정하게 심판하신다는 암시로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아이는 양심이나 마음으로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하실 가능성은 낮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구원의 방법을 예비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억울함과 하나님의 정의
- 성경은 고아와 과부, 억울한 자들을 특별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 곳에서 강조합니다(신명기 10:18, 시편 68:5).
-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 아래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완전히 이해하시며, 그들의 생명을 보상하고 회복시키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실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 구원에 대한 성경적 원리와 하나님의 주권
-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에베소서 2:8-9)이며, 하나님은 그의 주권 안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 억울하게 복음을 믿을 기회조차 없었던 이들에 대한 구원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영역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신뢰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즉, 복음을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조차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길 원하시므로(딤전 2:4), 그들의 겸손한 마음, 신성을 볼 수 있는 마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셨을 것이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who desire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한 댓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루셨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 모든 사람들의 / 죄에 대한 댓가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 이전의 모든 사람들, 이후의 모든 사람들, 기독교 문화 속에서, 교회 속에서 복음을 들었든, 듣지 않았던간에,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경험하고, 믿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고 계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메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복음"이며,
이것이 바로 "특별 계시"인 것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 특별 계시로, 주님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 계시" 속에서 만물 속의 신성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시고,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과 교제하고 싶어하신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고,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갈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Christ lives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delivered Himself up for me.』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일반 계시" 에 맡겨 두었을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별 계시"를 풍성히 누리고 넉넉히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 그
렇게 풍성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벧후 1장
[4] 이것으로 그리스도는 아주 소중하고 중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이 약속을 통해 여러분이 세상의 파괴적인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선을, 선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7]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을 넉넉히 갖춘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 못 보는 소경이며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10]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더욱 힘써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주시고 선택해 주셨다는 데 대한
확실한 경험을 갖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고
[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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