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메세지 - 조정민 목사님

(요 8:12-30) 『[12] 후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받을 것이다.'
[13]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자기를 증거하고 있으니 당신의 증거는 진실하지 못하오.' 하였다.
[14]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내가 나를 증거한다고 해도 내 증거는 참된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15] 너희는 사람의 표준대로 판단하지만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
[16] 내가 만일 판단하더라도 내 판단이 옳은 것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는 참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8] 내가 나를 증거하기도 하지만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증거해 주신다.'
[19]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모른다.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0]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헌금함 앞에서 이 말씀을 하셨으나 아직 그분의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을 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1]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떠나간다.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올 수 없다.'
[22] 그때 유대인들이 `자기가 가는 곳에는 우리가 가지 못한다고 하니 이 사람이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자
[23]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24] 그래서 내가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일 너희가 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너희가 정말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25] 그때 그들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누군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26] 내가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이 참되시므로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만 세상에 말한다.'
[27]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초막절의 3가지 중요한 요소

1. 물

- 목마름에 대한 갈망을 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고백

2. 빛

- 성전 안뜰 뿐 아니라, 여인의 뜰, 이방인과 여인들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곳, 여기에 빛을 비추니, 예루살렘 전체가 비취어졌다. 광야 생활때 불기둥으로 백성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자!

3. 집

-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던 삶을 기억하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생명의 빛, 생명의 떡.... 생명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빛과 어두움은 공존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본질이 어두움이었기에, 빛이 오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빛임을 선언했던 것이다.

빛이 없는 어둠과 같은 시기였기에, 빛이 오셔야 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빛인 것처럼 여기고, 자기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영혼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사람들이 높여주고, 있어보이는 그 모습이 되고 싶어한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고, 사람들의 댓글과 공감을 기대한다. 

스스로 내가 빛이 되고 싶어하고, 나를 우러러 보길 원한다. 

그렇게 빛이 되고 싶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빛을 찾아 따라가고 싶어한다. 댓글과 공감을 달며스타를 찾아다니고 구독을 한다.

그렇게 빛을 좇아다니고, 빛이 되고 싶어한다.

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절망 뿐인 것이다.

그렇게 빛을 좇아다니고, 빛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중에 진정한 빛은 무엇일까...?!?!
우리가 좇아가야 할 빛은 무엇일지...?!?!
나는 어떤 빛이 되어야 할지....?!?!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면 참되지 않다 - 요한복음 5장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참되다 - 요한복음  8장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아는 것  vs. 육체를 따라 판단했던 사람들

 

judge : 판단 = 비판 = 심판

동일한 단어 judge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구원과 함께 등장할 때는 심판

혼자서 사용될 때는 판단일지, 비판일지 문맥상 잘 확인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우리는 판단의 영역에 머물러야 하는데,
심판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별의 영역이지,

그 이상의 비판, 심판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19]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소?' 하고 묻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모른다.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엘로힘] 이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Lord 라고 표현했었는데,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니, 견딜 수 없는 분노를 표출했던 것.

나를 모르면, 내 아버지도 모른다. 

 

"예수님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시는 분이다."

 

다른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자기 욕망을 투사시켜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왜 영생으로 만족하지 못하십니까...?!?!

가장 피해야 할 그것 = 죄 가운데 죽는 것 

 

잘 죽어야 삶이 완성되는 것 아니냐?!

날마다 죽음을 묵상하는 것만큼, 가장 잘 사는게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삶이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어라... 

죄가운데 죽든 말든, 나는 신경 안쓴다.

그게 아니라, 자녀이기에 해주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그 마저도 조롱하는 사람들... 

 

[22] 그때 유대인들이 `자기가 가는 곳에는 우리가 가지 못한다고 하니 
이 사람이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하자

[23]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24] 그래서 내가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일 너희가 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으면 너희가 정말 너희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들을 향해서 결국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이 세상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곳이다. 정사와 권세와 악한권세가  가득찬 이 세상에서

하루 종일 돈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일주일간 예배자로 살지 않는다면, 여기에 와서 하는 것은 그냥 설교 한편 듣는 것이다. 

 

죄가운데 죽지 않으려고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데,

 

알지 못하는 것은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 그리스도 = 메시아이심을 = 하나님의 보내신 자임을....

 

[25] 그때 그들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누군지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26] 내가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이 참되시므로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만 세상에 말한다.'

[27]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신앙을 방해하는 편견과 선입견

자기 자존심, 자기 체면으로 자기 관점이 생겨버리고,

더욱더 편견과 불신에 빠져버리고, 기득권자가 되어버림. 

 

[28]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과 또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분은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알고 계셨구나. 

이야기 하더라도, 그들은 믿지 않고,

죽은 다음에야 그들이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구나.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이야기하시고,

말로만 하지 않으시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되도록 희생하신다.

 

마 28:29-30 처럼,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리라고 약속하신 것.

예수님도 하나님의 그러한 동행을 경험하셨기에,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해주신 것이 지상최대사명이구나.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과연 이 믿음이 어떤 믿음일지...?!?

두고 봐야 합니다.

 

 

마치는 찬양

세상 모든 영혼이 네게 달렸나니,

가서 제자 삼으로 나의 길을 가르치라

나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300x250
728x90

 

1.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어떤 작품일까요?

박완서(朴完瑞)는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한국 현대 문학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한 말씀만 하소서"입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의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의 아들이 죽은 사건을 다룬 자서전, 일기에 가까운 글입니다. 이 작품은 박완서의 아들이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아픔과 슬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가 아들의 사망과 그로 인한 아픔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작품으로, 그녀의 솔직하고 깊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자서전은 그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와 수용, 회복의 과정을 다루며, 그로 인해 변화된 삶과 그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한 말씀만 하소서"는 박완서의 아들의 죽음을 다룬 자서전으로, 그녀의 아들과의 이별과 이로 인한 슬픔, 그리고 이후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 말씀"은 무엇일까요?

 

ChatGPT 선생

 
ChatGPT 선생의 대답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박완서가 생각한 "한 말씀"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박완서는 가난과 억압, 그리고 소통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여러 목소리들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한 말씀"은 억압된 이들이 억누르고 참아야 하는 목소리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제약과 억압으로 인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한 말씀"은 이들이 주변에게 소리 내어 자신의 억압과 억울함을 표현하고,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한 말씀"은 소통의 부재와 이해의 부재를 비판합니다. 작품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기 어려워하며, 각자의 억압과 상처를 내면에 묻고 살아갑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어려움과 갈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 말씀"은 이러한 소통과 이해의 부재를 극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은 사회적인 변화와 정의를 향한 소원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은 가난과 억압을 경험한 이들이 사회적인 변화와 불평등 해소를 바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 말씀"은 이들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대화와 행동을 촉구하며,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염원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박완서가 생각한 "한 말씀"은 억압된 목소리, 소통의 부재, 이해와 공감의 부재, 그리고 사회적인 변화와 정의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각하게 된 "한 말씀"....

나는 이 책을 보지는 않았다. 작품의 주제와 깊이는 가볍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잠깐의 이야기 속에도 많은 것을 느꼈고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위에 ChatGPT에게 물어본 책 리뷰를 보고, 아내에게서 들은 내용을 비교해 보면 완전히 많이 달랐다.

아직도 인공지능이 읽어낸 책의 의미와
실제 사람이 감동받아 느끼고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의대생 아들을 잃고 너무나 억울한 상실감에 빠져버린 작가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 그가 신에게 부르짖은 말...

"한 말씀만 하소서"....


아무 대답이 없는 신이 원망스럽고 답답했을까?
그 마음의 토로가 얼마나 가슴 절절했을지...
그랬던 그녀가 많은 과정을 거쳐...

마지막 순간에
무릎을 꿇고 변기에 토를 하였다.

무릎 꿇는 자세로 토를 하신 박완서님
(OTL 자세였을 것 같다.)
 
교만했던 자기 안에 있던
이기적이고 악했던 마음을 토해냈다.
절대자 앞에서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깊이 있게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처절한 자기발견의 순간이 있을수가..

그때 오히려 신기하게도 작가는 참 평안과 자유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이제 이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구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나..

도저히...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도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아주 아주 조금, 가슴이 아닌...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인생에는 여러 차례,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원망과 슬픈 마음이 우리를
평생을 따라다닐 수 있다.
그런 힘든 일이 또 다시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 그런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너무나 깊이있는 공감을 해줄 것 같다.


 
 
 
 

300x250
728x90

박완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 소설 개요

이 소설은 1970년에 발표되었으며, 박완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인 김재식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소년으로서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며 삶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이 소설은 전쟁, 분단, 빈곤, 사회적인 억압 등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과 사랑, 희망의 가치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은 현실주의적인 묘사와 동시에 인간의 내면적인 갈등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생각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 박완서의 문학적인 재능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내용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폭넓은 인정을 받았으며, 현대 대한민국 문학의 고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싱아란 대체 무엇일까?

"싱아"는 "옥수수 심부름꾼"이라는 뜻입니다. 소설 "그 많던 싱아"에서 싱아는 주인공 김재식의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옥수수 심부름꾼은 가난한 집안에서 식사를 위해 옥수수를 심어 키우고 수확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많던 싱아"에서 싱아는 가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며, 작품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희망과 인내력을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인내와 힘들게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3. 싱아는 옥수수심부름꾼인데 왜 싱아를 먹는다는 표현을 했을까?

 

제목에서 "싱아"는 옥수수 심부름꾼으로서의 싱아뿐만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질문은 작품 전반에 걸쳐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찰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싱아를 먹는다"는 표현은 싱아 자체가 아니라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먹고 살아가는지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작품의 주요 주제와 메시지를 강조하고, 독자들에게 생각과 공감을 일깨우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울림을 주는 문구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문구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이 문구는 가난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실제 상황과 그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을 직시하며, 사회적인 불평등과 분단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한 공감과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입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가난과 부족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억압과 이를 넘어서는 데 대한 묵직한 질문이며, 독자들에게 근심과 공감을 일깨웁니다. 이 문구는 작품의 핵심 주제인 가난, 억압, 사회적인 불평등 등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유도하고, 독자들에게 이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유발합니다.

따라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문구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문구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다른 문구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문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가난한 가족이지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작은 빛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인내는 힘을 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사랑과 희망은 가져갈 수 있다."
"생존의 의지는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누구나 힘들게 살아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려움이 오래 갈지라도, 우리는 함께하며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


이러한 문구들은 작품 "그 많던 싱아"의 주요 테마와 메시지를 반영하며,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강인함과 희망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용기를 부여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5. 박완서씨는 실제로 6.25 전쟁을 경험하셨을까?

박완서 작가는 6.25 전쟁(한국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입니다. 박완서는 1931년에 태어나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에 20대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 상황과 그에 따른 어려움을 직접 경험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작가로서의 박완서는 전쟁과 사회적인 억압, 가난 등의 주제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쟁과 사회적인 현실의 영향을 깊이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현실적인 경험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전쟁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의 작품은 한국문학의 중요한 역사적인 산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좋은 독서 많이 하세요 :)

300x25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