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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 아픔, 괴로움이 있다.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가정에 누군가 아프면, 모든 일은 올스톱된다. 
병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들어온 불청객 하나로 인한 그 문제 때문에,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병이고 골치거리였던 것
예수님의 시야에서는 "영광"을 받을 수 있는 통로
 
동일한 문제를 어떻게 "영광"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해봐야 할 질문...
 
내가 잘 되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일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잘 되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려움의 과정을 거쳐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다.
 
고난을 피해가려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시야로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 빛은, 일출일까? 일몰일까? 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믿고 있을까? (5월 달에 제주도 우도에서 봤던 "일출" 사진)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이틀을 더 유하시고..."
사랑하셨다면, 하루라도 빨리 와서 도와주셔야 했던 것 아닐까...?!?!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은... 여기서 왜 이틀을 더 기다렸다가 오신 것일까?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무엇인가...?!?!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 : 4일간 장례를 치르면 완전히 죽었다고 봤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재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뜻대로 다 되었다면 아무리 잘되어봐야 내 size로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면, 하나님의 size대로일을 행해나가신다.
 

일찍 오셨다면 병 치유 였겠지만, 이틀 뒤에 오셨으니, 부활 사건이 되었다.

 
나를 반기지 않는, 나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가려고 하시는 예수님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누구나 이런 길을 피하려 하는데, 왜 예수님은 이런 길을 자처해서 가려고 하셨을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병  → 영광
밤과 돌  →  빛과 생명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 나의 이 목회, 나의 이 예배...
→  (세상의 시야) 개고생
→  (하나님의 시야) 내 인생에서 가장 복된 시간
이라고 믿음의 시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1:15) and I am glad for your sakes that I was not there, so that you may believe; but let us go to him.

이틀을 더 유하신 이유, "나사로가 죽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제자들이 믿을 수 있게, 깨달을 수 있게 기회를 만드신 것
 

지금 이틀을 더 유한 이유? 
"너희를 위하여" = 제자들의 "믿음" 위하여
기다리셨던 것이다.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마의 이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예수님은 부활을 위해서 가려고 하는데,
도마는 왜 "죽으러" 가자고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을 때 지금 상황은 돌 맞으러 죽으러 가는 길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고난을 감당하겠다 하는 그의 뜻은 기특할 수 있지만,
그는 예수님이 믿길 원했던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시작은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하이데거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 말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후기철학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흔히 위 말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존재를 말해준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널리 퍼져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의 언어로 나의 언어를 바꾸어 나가자! 
병?   →  영광
죽음? →  생명과 부활
고난?
 →  (               )
상처?
 →  (               )
인생의 많은 시련들?
   →   (               )

"복음의 언어"로 표현할 때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사로는 다시 산 후에 다시 죽습니다. 나사로는 부활이 가능하다는 모형을 보여준 것입니다.
부활의 모형을 보여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다시 사신 후에 승천하여 영원히 사는 본체, 본질을 보여줍니다. 
 
부활은 곧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가장 복된 것은 Eternal Life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삶으로 실천할 내용 돌아보기

지금 내 삶에서 믿음의 시야로 바라보고 기도해야 할 것?
 
- 회사의 구조조정
- 올해, 내년에 우리를 지탱해줄 매출 구조
- 가족들의 믿음과 구원, 관계성의 온전한 회복
-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생의 비전과 가치를 나의 인생 가운데 잘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선한 일들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기에 기도도 정기적으로 간절히 하지 않고 행동도 구체적이지 않다. 
38년된 병자처럼, 앉은뱅이처럼,
죽은 나사로를 바라보는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일의 영광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믿음이 없기에 하는 행동들을 최소화하자.
교제 목적 없이 일락을 위한 시간을 최소화하자.
* 적용 : 가족들을 방문할 때, 빈 손으로 가지 말자. 처남네, 형네 가족들을 위해서도 섬길 것들을 준비하자
*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베이직 교회 영상으로 좋은 메세지들을 소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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