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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헬라어] = 파라클레 + 토스
= "보혜사"라고 표현됨.
보혜사는 강원도 절 이름이기도 하다.
성령의 원 의미를 살려서 적절한 한자를 붙여서 표현한 것이다.
보호할 (보)
은혜로울 (혜)
가르칠 (사)
모두 성령의 속성이고 역할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이 내 안에 있지 않을 때는,
=> 나에게 유리하면 거짓이라도 수용하고,
=> 나에게 불리하면 진실이라도 왜곡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면?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고아와 같이 버림받은 느낌이 들겠지만,
너희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내가 버림받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반드시 이런 느낌을 받게 되는 시점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
예수님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리"
이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나? 응답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나를 버리셨나 싶은 고통이 느껴지는 길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 "부재"는 일시적이다.
하나님의 부재를 짧은 순간 경험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부재의 시간에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잠시 떠나가시는 목적이 있으시다. 왜?!?!
(대하 32: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대하 32:31) 『And even [in the matter of] the envoys of the rulers of Babylon, who sent to him to inquire of the wonder that had happened in the land, God left him [alone only] to test him, that He might know all that was in his heart.』
심중에 있는 것들이 남김없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시간이다.
내 진짜 실력과 능력이 그 순간에 드러나게 된다. 내가 어떤 수준인지, 내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아주 잠시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시는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
A가 B를 포함하는데, B가 A를 포함할 수 있는 방법?
상호 내주의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함이다.
상호 내주?
- 나를 철저하게 부인하는데,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상태
- 내가 상대를 위해서 살았는데, 내 안이 가득 채워지는 상태
- 내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는데, 사실은 내가 영광을 받게 되는 신비한 상태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이르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질문 속에서 질문자의 관심이 드러난다.
"세상에 나타내는 것",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유다.
예수님의 이 대답이 이해가 되기란 어려웠다. 그것을 도와주시는 이가 성령이셨다.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을 받아야 제자가 제자다워질 수 있다.
내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중심이 되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마음이 중심이 되어서 살고 있는가?
평생을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인 것이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우리는 이 불안을 알고 있다.
이 시기를 겪어가면서 성장하게 된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분리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견디고 성장해 나가게 된다.
분리 불안을 해결하는 2가지 방법이 있다.
1. 아이의 정신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장난감이나 영상을 제공한다.
(엄마의 존재 자체를 생각할 필요 없게 만드는 것)
=> 세상이 주는 평안의 방식
2. 사전에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해 두는 것. 잠시 보이지 않더라도, 곧 나에게 오겠구나!라는 신뢰관계를 만들어두는 것.
=>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방식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자극의 세기가 계속 더 강해져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 속에서 더욱더 강력해져 간다.
예수님은 헤어지기 전날, 발을 닦아주시고, 성만찬의 시간을 가지셨다.
자신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주셨다.
진정한 어른으로, 장성한 분량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떤 것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이들 : 애착베개가 있으면, 생명이 없는 그것 때문에 잠을 잘 잔다.
우리 : 생명이 없는 애착배게도 그런 효과가 있는데, 하니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강력한 애착을 주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 관계, 애착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평안이 우리를 꽉 채울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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