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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화로대의 위력


캠핑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기억에 대해 기록해보려고 한다. 한 동안 열심히 집중했던 것들을 그만두고나니, TV 보는 시간이 늘었다. 여러 프로그램들 중 '나혼산(나혼자산다)' 애청자가 되었는데, 어느 날엔가 그 프로그램에서 전현무 씨가 캠핑을 떠나 화로대로 불멍을 즐기는 것을 보고 갑자기 충동적으로 화로대와 그리들을 샀다.
 
그 때가 2022년 말쯤이었는데, 그 당시 코로나 여파로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앞다투어 캠핑을 소재로 방영하고 있었다. 예쁜 캠핑장비와 맛있는 캠핑요리, 낭만적인 분위기로 치장했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사서고생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었다. 왜냐하면 나의 20대에 온갖 수고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했던 캠핑의 기억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당연히 열악한 상황일 수 밖에 없었는데, 내가 했던 것은 캠핑이라기 보다는 수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진행해야하는 대규모 단체 프로그램이었는데, 지금처럼 편리하고 예쁜 캠핑장비들은 찾아보기 어려웠을 뿐더러, 불편한 샤워시설, 열악한 화장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텐트시설 등등, 나이들어 굳이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TV에서 전현무 씨의 캠핑카('무카'라고 하더라)와 함께 등장한 화로대! 거기에 매직 불쇼!!를 보다가 문득 불멍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덜컥 화로대를 구매하게 된 것이다. 요즘 세상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손가락만으로 구매가 얼마나 손쉬운지! 며칠 지나지 않아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캠핑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텐트부터 사고 등등 등등 사다가 급기야는 화로대도 사는 모양인 것 같은데, 나는 순서가 바뀌었다.
 
화로대를 받아 들고 보니 당장이라도 떠나 어서 빨리 이 물건을 개시하고 싶어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장비는 이번에 장만한 화로대와 그리들, 그리고 이전부터 갖고 있던 캠핑의자가 전부인고로 갈 만한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부모님의 농가주택이었다. 부모님이 주말마다 가서 텃밭 일구시고 친척들도 만나고 오는 그런 곳이었는데, 마침 장소가 비어있던 어느 주말, 호기롭게 장작 10Kg을 사들고 화로대를 개시하러 나섰다.

 
그 집은 치악산 자락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카페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인데, 또 거기서 조금만 들어오면 사람이 없는 그런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뒤로는 더 이상 길도 없이 산으로 막혀있는, 길 끝에 위치한 곳이 우리 집에 오는 이가 아니면 사람이 지나다닐 일이 없 외진 곳이다. 인적이 없고 산에 둘러싸여 있어 나는 어쩐지 그 곳이 낮에도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었다.
 
도착하여 날이 어스름해지니 산 아래쪽에서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 둘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즈음 데크에 앉아 화로대를 개시했다. 처음이라 요령이 없어 마른 나뭇가지와 한참 동안을 씨름했다. 어렵게 어렵게 불이 붙어 조금씩 빨갛게 올라오더니 이내 활활 타올랐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 그리고 따뜻한 나무 냄새와 더불어 홀홀 타오르는 장작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3감으로 느끼고 있자니 화로대를 정말 잘 샀다 싶었다. 거기에 매직가루를 뿌리니 신비로운 빛깔로 불꽃이 화르륵 타올랐다. 

이래서 불멍을 하는 것인가? 나는 불멍의 매력에 완전히 쏙 빠지게 됐다.
마법의 가루 솔솔

 
사실, 아빠가 그 농가주택을 지으신지는 10년도 더 됐는데 이제껏 나는 몇 번 가본 적이 없었다. 가더라도 당일로만 갔지, 거기서 잠을 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거기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 심심한 데다, 아까 언급한 그 으스스한 느낌이 어딘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멍을 할라치니 이곳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캠핑 왔다 생각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도리어 호젓한 매력이 되고, 화롯불과 함께하니 숲 속의 으스스함(?)도 따스한 낭만으로 변했다.   

 
한바탕 불멍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차 한잔 타들고 데크에 앉아 경치를 감상했다. 에서 '딱딱딱딱' 나무 쪼는 소리가 굉장히 가깝게 들려왔다. '딱딱딱딱'보다는 '톡토도독톡'에 가까운 귀엽고 경쾌한 소리였는데 혹시 이게 딱따구리 소린가 싶었다. 운이 좋았는지, 소리 나는 곳을 쳐다봤을 때 오색딱따구리를 실물 영접했다. 딱딱딱딱 나무를 쪼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게다가 잠시 후엔 푸드덕하고 꿩이 날아가는 것도 눈앞에 보이는  아닌가! 또 뭔가 신기한 볼거리가 있을까싶어 나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살짝 코끝이 시린 청량한 공기에 따스한 차 한잔을 손에 쥐고 이따금 울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이른 아침을 만끽하는 이 기분, 이게 힐링이지. 평소에는 아파트에 갇혀사는 우리 집 달곰이도 아침부터 신이 나서 우다다다 뛰노는 걸 보고 있자니, '오구오구 내 새꾸!'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나는 급기야 일정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원래는 그곳에서 저녁 때 불멍만 하고 이튿날 아침에 바로 돌아오려 했었는데,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휴일이니 그날까지 하루를 더 있자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인 월요일에 저녁까지 해 먹고 최대한 늦게까지 있다가 돌아왔다. 

출발할 때는 한 번 정도 불을 지피고 오겠거니 해서 넉넉하게 샀다 싶었던 장작 10Kg은 2박 3일로 늘어난 일정에 일찌감치 동이 났다. 거기에 아빠가 모아놓은 장작까지 더해서 3일 동안 원 없이 불멍을 했다. 장작불에 빠질 수 없는 고기와 라면, 그리고 군고구마와 보이차까지 화로대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었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땐 엄마가 심어놓은 야채들을 바로바로 공수해다 먹을 수 있었는데, 바로 따온 고추와 호박잎은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었다. 야채값이 금값인 지금, 어디서 이런 신선한 채소를 먹겠냐며 연신 감탄하며 먹었다.

보글보글 라면
2박 3일을 꽉 채운 힐링불멍이었다.

 
그것으로 시작됐다. 나의 캠핑용품 구매질. 캠핑테이블, 폴딩박스, 그리고 내친김에 차박텐트까지 샀다. 그리고 소소한 캠핑용 주방용품들도 ㅎㅎ 화로대를 그 집에서만 쓸게 아니라, 밖으로 리얼 캠핑을 나가고 싶어진 것이다. 20대 때는 그렇게 고생스럽다고 싫어했던 캠핑이 40대가 되고 나서 이렇게 기대되는 일로 바뀌다니..ㅎㅎ 

화로대의 위력이다.

 
그 후로 '강아지와 함께' '화로대를 쓸 수 있는' '차박 캠핑장'을 찾아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요즘 날이 추워지니 텐트는 또 시들해지고 편한게 좋아서 다시 치악산 농가주택을 찾아가곤 한다. 얼마 전에도 가서 실컷 불멍하다 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캠핑이 아니라 불멍의 매력에 빠진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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